노동조합 초청으로 조합원 교육을 하다 보면 곤경을 겪을 때가 있다. 주로 노동시간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

“우리나라 법정근로시간 한도는 52시간입니까 아니면 68시간입니까?”

근로기준법 50조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이다. 근로시간은 휴게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한 실근로시간을 의미한다. 단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하면 1주일 12시간 한도 내에서 연장근로가 허용된다. 근로기준법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답변은 쉬워진다. 주당 근로시간 상한은 52시간이 정답이다.

문제는 68시간이다. 1주당 법정근로시간 상한이 68시간으로 늘어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럴 때마다 ‘68시간의 마술’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동원한다. 마술사는 바로 고용노동부다. 마술사가 건 주술은 노동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리는 것이다. 노동부는 주당 연장근로 한도(12시간)에서 휴일근로를 제외하는 주술(행정해석)을 부린 것이다. 1주일은 5일이라는 해석이다. 1주일에 5일 동안 52시간 꽉 채워 일하고, 주말에 16시간 일해도 법정근로시간 위반은 아니라는 식이다.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둔갑한다. 이것이 68시간의 마술이다.

근로기준법보다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우선인 현실, 68시간의 마술이 통하는 세상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헌법에 규정된 노동기본권이 바로 선다. 세계에서 장시간 노동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국회가 근로기준법 개정을 우선 과제로 포함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애초 근로기준법 개정은 정부·여당이 규정한 노동개혁법안에 포함됐다.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상보험법·파견법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노동개혁을 역설하면서 국회에 4대 법안 일괄처리를 압박했다. 20대 국회 개원 후 새누리당 이완영(파견법·산재보험법 개정안)·김성태(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개정안) 의원이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박 대통령 탄핵 후 4대 노동법안은 그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야당은 4대 노동법안을 ‘최순실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최순실씨와 공모한 박 대통령이 재벌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강제로 걷으면서 반대급부로 밀어붙인 법안이라고 규정했다.

여당도 새누리당과 (가칭)개혁보수신당으로 쪼개졌다.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발의한 김성태 의원은 개혁보수신당을 선택했고, 이완영 의원은 새누리당에 남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였던 하태경 의원도 개혁보수신당을 택했다. 새누리당 신임 간사는 한국노총 출신 임이자 의원이 선출됐다. 이처럼 정국은 급변했고, 상황은 꼬일 대로 꼬였다. 이런 가운데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종전의 4대 노동법안 일괄처리 입장을 바꿔 근로기준법 개정을 선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정부·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기업 규모에 따라 2020년까지 4단계로 나눠 1주당 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노사합의가 있을 경우 2023년 말까지 휴일에 1주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안이다. 게다가 정부·여당 안에는 연장근로 할증률을 50% 삭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엔 이견이 따로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곤란하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취지는 사라지고, 잘못된 행정해석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단계적 시행과 특별연장근로 허용은 장시간 노동 규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68시간 노동시간은 8시간만 줄어든 60시간으로 유지될 뿐이다.

20대 국회 개원 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기준법상 1주 개념을 5일이 아닌 ‘휴일을 포함한 7일’로 정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 의원의 법안은 정부·여당의 법안과 대척점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기권 장관이 종전에 정부·여당안을 고수한다면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근로기준법 국회 처리를 절실히 원한다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면 이 장관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 장관부터 종전 입장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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