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금융노동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감정노동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비율의 금융노동자가 고객에게서 욕설을 듣고 있었다. 비정규직일수록 감정노동 보호가 취약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 노사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올해 연구사업 최종발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주제는 '금융산업 감정노동 실태와 개선방안'이다.

"내 감정은 상품" 욕설·폭행 참고 일해

채지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센터와 함께 하반기에 금융노동자 6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시중·저축은행과 증권·보험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감정노동에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창구직·콜센터·채권추심·보험영업직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이들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8.76시간이었다. 응답자의 86.3%가 “공격적인 고객을 상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능력 밖의 일을 요구하는 고객을 상대하고 있다”는 답변도 75.9%나 됐다.

금융기관을 찾는 고객의 성향·요구가 금융노동자들로부터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감정을 “상품처럼 느낀다”는 금융노동자가 72.7%로 조사됐다.

감정노동은 금융노동자들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줬다. “고객응대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를 묻자 응답자의 73.5%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중 “매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6.6%였다. 채 연구위원은 “금융산업 감정노동자들의 4분의 1 가량이 고객응대로 인해 매우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욕설·폭력 등 물리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상당했다. 72.3%의 금융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욕설을 들은 적 있다”고 밝혔다. “폭력을 당한 적 있다”는 응답은 8.6%였다.

채 연구위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해 고객피해시 대응매뉴얼과 문제고객 법적조치 유무를 비교해 봤다. 그랬더니 정규직은 “매뉴얼 없음”과 “법적조치 없음”이 각각 74.1%와 84.1%로 나타났다. 비정규직은 해당 수치가 각각 76.47%와 91.37%로 정규직 보다 높았다.

채 연구위원은 “고객으로 인한 피해시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나 법적조치 지원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비정규직의 감정노동 피해시 정규직보다 더 큰 부정적 영향을 회피할 수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에게 '최소 자율성' 부여하자"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금융노동자들에게 업무 자율성을 주고, 평가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 소장은 “직무설계는 경영자 권한이지만 근로자에게 약간의 자율성만 주어진다면 고객과 마찰을 빚는 상황을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도한 감정노동 인내는 성과평가와 연계돼 있으므로, 성과평가제를 폐지하거나 다른 방식의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특히 금융감독원이 금융사별 악성민원을 수집해 사례를 공유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조 역할도 강조했다. 정 소장은 “금융권 노조도 보건의료노조처럼 정기적으로 노동환경·건강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현황을 파악하고 개입할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철 사무금융노조 정책실장은 “돈을 다루는 금융업 특성에서 오는 감정표현 억압기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절한 자기통제권과 의료적·법적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조치가 실제 작동할 수 있도록 노조가 현장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승현 서울시 노동정책담당관 노동보호팀장은 “서울시는 이미 18개 기업과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를 위한 MOU를 체결했는데, 이를 가다듬을 것”이라며 “내년 초 선언적 의미의 노사민정 협약을 하고, 개별 사업장과는 실질적인 도움을 제고할 수 있는 업무협약 체결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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