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의 칼럼니스트 겸 작가

내가 사는 산골마을엔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일종의 축복을 전하는 눈. 그 눈의 결정체를 만져 본다. 차갑다. 하지만 마음까지 차갑지 않다. 마음은,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느낌이다. 촛불의 온기 때문일까. 스밀라가 했던 이런 말도 떠오른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키 160센티미터, 몸무게 50킬로그램, 나이 37세의 독신 여성이다. 특이하게도 그린란드의 원주민이며 사냥꾼이기도 했던 여자와 부유한 덴마크 의사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무엇보다 얼음과 눈에 대한 매우 특별함 감각을 지닌 전문가인 여자. 사람들이 흔히 ‘정상’이라고 부르는 집단적 삶에 편입해서 살아가지 않는 이 독신녀는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고 말할 정도로 차갑고 냉소적이다. 하지만 이 여자만큼 뜨거울 수도 없을 거다. 사람들에게 그토록 냉소적인 여자가 어떻게 이웃집 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타인에 불과한 소년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그토록 엄청난 일들을 도모할 수 있을까.

스밀라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 손꼽히는 인물.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인 필립 말로가 냉소적이지만 인간에 대한 온정을 놓치지 않는 인물이라면 사람보다 눈을 더 사랑하는 스밀라는 이웃집 아이의 의문사를 파헤치기 위해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한없이 차가운 동시에 한없이 뜨거운 여자였다.

눈 때문일까? 촛불 때문일까? 왜 지금 갑자기 스밀라가 생각나는 걸까. 스밀라는 있을 수 없는 그저 소설의 가상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는 요즘이다. 눈 오는 주말 광화문광장에 나가면 냉철한 지성에 뜨거운 인류애를 가진 멋진 선남선녀가 내 눈에는 다 스밀라나 필립 말로처럼 보이는 요즘이다.

웬일인지 영화 <디파이언스>도 생각난다. 유태인 생존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200일 동안 산속에서 게릴라 전투를 벌이는 실화를 다룬 영화. 초반엔 말할 수 없이 살벌하다. 언제 총알이 날아와 죽을지 모르는 상황. 게다가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무형의 적까지 무섭게 달려들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인간들이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더듬더듬 사랑 고백을 하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한다. 심지어 그 살벌한 상황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혼식마저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사랑을 구하는 인간들의 욕구가 참 신성하고 위대하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주말마다 촛불이 타오르기 전 이 나라는 그저 헬조선의 암담함밖에 없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 없이 지내는 와중에 설사 직장이 있다 해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세계 최고의 직장 스트레스 속에서 죽을 만큼 피곤한 일상들을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초대기업이 순이익을 독차지하고 대다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으니까.

하지만 이제 헬조선의 청년들이 광장에서 촛불과 함께 희망을 구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단순히 대한민국헌법과 국민을 우롱한 두 여자를 단죄하는 것 이상의 희망. 다 함께 힘을 합쳐 재벌이나 기득권의 이윤 추구가 아닌 다시 세월호 같은 참담한 아픔을 겪고 싶지 않은 국민의 요구에 맞춰진 더 안전하고 더 공평하고 더 아름다운 나라로 갈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위해 저항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 함께 평화롭게, 심지어 품위 있게 저항하며 우리는 서로 안을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근사할 수가. 소설보다, 영화보다 더 근사하다. 지금 우리 현실이.



칼럼니스트 겸 작가 (@kimkyu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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