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선택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낡은 체제는 가라”는 국민의 뜻은 명확했다.

그런데 그 낡은 체제는 끈덕지다. 침몰하는 ‘피의자’ 박 대통령을 부여잡고 살아남겠다고 추태를 보이고 있다. 헌정질서 파괴와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은 단연 박 대통령이다. 이견은 없다. 정부와 여당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최순실이라는 존재를 몰랐다고 부인하면 끝인가. 몰랐을 리 없겠지만 부역이든 동행이든 함께했다면 낯을 들기 어려울 것이다.

탄핵 이후 정부와 여당을 보면서 국민의 부아가 다시 끓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미 '대통령이 된 듯'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권의 노선과 정책에 가장 충실한 인물로 꼽힌다. 박 대통령과 함께 청산돼야 할 대상이다. 여러 정황상 책임질 일도 있을 법하다. 그럼에도 운 좋게 완장을 찼다.

발언은 거침이 없다. 안보·외교를 강조하면서 "불법 집회·시위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촛불민심이 심판한 국정 역사교과서와 사드 배치도 강행하겠다고 한다. 국회 대정부질문 참석을 거부하면서 "대통령인 줄 안다"는 비난을 샀다. 이 와중에 정부·공공기관 관피아가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어떤가. 친박 대 비박 간 당권경쟁은 한 편의 조폭영화를 보는 듯하다.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피 터지는 살벌함이 찝찝한 느낌을 남기는 것이다. 더군다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책임이 크다고 할 친박세력은 지난 13일 정파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만들고는 당권만큼은 놓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 정부와 여당의 머릿속에 국민은 없다.

이참에 보수(保守)를 되새겨 보자. 국어사전은 보수를 “보전해 지킴” 또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 보수세력이 지켜야 할 게 뭔가. 바로 헌법이다. 1987년 체제가 낳은 헌법은 부족하지만 3·1 운동과 4·19 혁명을 잇고 6월 항쟁의 뜻을 담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주인인 국민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낡은 체제는 가라고, 진정성 있게 반성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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