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여의도를 너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여의도의 여가 너 여(汝)자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강 가운데 있는 섬으로 가장 큰 이 섬은,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이지만, 기록에 의하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여의도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역사나 중요한 기록이 모두 한문으로 된 것을 고려하면 민간에서는 너섬이라 부르던 것을 여의도로 기록한 것이라 짐작됩니다. 날뫼는 비산(飛山)으로, 밤골을 율곡(栗谷)으로, 선돌을 입석(立石)으로 기록한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현재의 행정구역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제히 현대식으로 고칠 때 순수한 우리말은 버리고 모두 한자어로 기록했으니 당연히 너섬은 여의도동이 된 것이지요.

사실 이 너섬은 박정희가 개발독재 과시용으로 개발하기 전까지는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개발 차원에서 보면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여름에 홍수가 질 때면 섬의 상당 부분이 잠기기도 했다니까요. 그래도 좀 높은 지역에 농사를 짓기도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군사용 비행장으로 사용하면서 해방 후 상당 기간을 그대로 비행장으로 사용하다 박정희가 그곳에 어마어마한 광장을 조성해 5·16광장이라 이름 붙이고, 무력을 과시하는 장소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여의도 개발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 전까지는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땅이어서 ‘너나 가져라’ 했다 해서 너섬으로 불리기도 했답니다.

자본주의 개발독재의 상징 여의도,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어마어마한 넓이의 아스팔트 광장을 중심으로, 그 머리 부분에 정치권력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을 지었습니다. 아마 현존 중요 건물 중 나쁜 순서로 꼽으라면 뒤지지 않을 그 외모는, 돌출돼 있는 어마어마한 기둥들과 꼭대기 돔은, 실제보다는 외양을 중시하며 온갖 특권을 누리며 가장 비효율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의도의 심장 가슴 부근에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거래소와 전경련을 비롯한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즐비하고, 양팔 부근에는 KBS와 MBC(지금은 상암동으로 본사 이전) 등 가장 영향력 있는 공중파 방송이 자리 잡았습니다. 옆구리 부근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교인수로는 세계 제일이라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교인수가 60만명이라 함)가 있고, 발치에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63빌딩을 세워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그러니까 독재자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은 자연 생태의 땅 너섬을 파괴하면서 5·16광장을 중심으로 천박한 자본주의 바탕 위에 개발독재의 사상누각을 세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곳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시대가 되며 그 적폐는 극에 달해 측근 사인에 의한 국정농단이 공공연하게 청와대를 중심으로 벌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가만둘 우리 민중이 아니죠. 가장 약해 보이지만 뭉치면 강한 촛불이 광장과 거리를 메우기 시작했지요.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촛불 방울은 모여서 내가 되고 흘러서 강이 됐습니다. 드디어 촛불 바다가 돼 온 땅에 넘쳤습니다.

우리는 지난 9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국회는 오후 3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본회의를 소집해 투표에 돌입하고 있었습니다. 탄핵소추안 의결 필요인원인 200명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새누리당 의원 중 28명의 찬성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당의 당적을 가진 대통령을, 임기가 1년도 더 남았는데 쫓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234명의 찬성으로, 국회의 박근혜 탄핵은 확고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약한 촛불의 거대한 힘에 밀린 것이지요.

그런데 1차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촛불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촛불은 박근혜와 함께 여의도로 상징되는 패거리 중심의 지역이나 이념을 팔아먹는 보수정당 등 낡은 정치를 탄핵하고, 전경련 해체를 포함한 재벌 금융자본주의를 탄핵하고, KBS·MBC 종편을 비롯한 방송과 조중동 등 수구언론을 탄핵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같은 부패 종교집단을 탄핵하고, 반환경·생태의 토건주의까지 몰아내는 데까지 나아가, 적패를 일소하고 체제를 바꿔 새 나라를 건설하는 촛불혁명을 완수할 때까지 힘차게 타오를 것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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