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경제적 효과로 보면 박근혜·이재용 게이트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청와대 협조로 8조원의 이득을 봤고, 국민은 6천억원을 손해 봤다. 최순실 일당이 챙긴 이권이나 다른 재벌 총수 이득과는 아예 숫자 단위가 다르다.

재벌 총수 구속은 보통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손실 사이의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2008년 삼성 특검은 이건희 회장이 배임·횡령·탈세를 저지른 증거를 확보하고도 “기업 경영에 있어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경쟁이 극심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이유로 불구속했다.

재벌 총수를 법대로 처벌하는 것이 경제에 그렇게 부정적일까. 필자는 이재용을 구속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경제에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재벌의 부정적 효과는 줄이고 긍정적 효과는 더 키울 수 있어서다.

해외 경제학자들이 평가하는 한국 재벌의 긍정적 효과는 높은 투자율이다. 기업 자산이 곧 가문 재산이다 보니 기업 덩치를 키우기 위해 높은 투자율을 유지한다는 분석이다. 미국식 주주 중심 기업들이 단기간에 이익을 높여 주주 배당액을 늘릴 수 있는 경영에 집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 한국은 1980년대와 90년대 비슷한 개발도상국 국가보다도 5%~10%포인트 높은 투자율을 기록했고, 이것이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중요한 동력이었다.

하지만 재벌의 족벌경영은 부정적 효과 역시 크다. 무엇보다 가문의 경영권 유지·승계 비용이 엄청나다. 이재용 사례를 보자.

이재용은 95년 60억원을 이건희로부터 증여받아 현재 10조원 재산을 소유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낸 세금은 15억원이 전부다. 어떻게 이 재산을 만들었을까. 에스원·엔지니어링 등의 계열사가 이재용 특혜 주식상장을 하면서 수조원의 주가 차익을 만들어 줬다. 에버랜드·SDS 같은 계열사는 헐값 전환사채를 발행해 이재용이 공짜로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에는 별 관련성도 없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오직 이재용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합병시켰다.

경제학자들이 자주 쓰는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모든 효용에는 반대급부 비용이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재용이 돈을 버는 만큼 국민연금 같은 기존 주주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삼성이 이재용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경제에 끼친 손해는 이게 끝이 아니다. 삼성은 그룹 전체가 이재용 지분이 있는 계열사를 키우기 위해 일감을 몰아주고, 심지어 납품가격까지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 내 중소기업은 배제되고 희생됐다.

삼성은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삼성은 최근 이재용 사업으로 불리는 보건의료 사업에 전 계열사가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이재용 사업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없애기 위해 정부가 국민보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나온다. 이재용 사업을 위해 국민보건이 위협받는 셈이다. 2001년에는 이재용 사업이라 불린 e삼성이 망하자, 그 지분을 계열사들이 인수해 이재용 손실을 분담했다. 이런 손실은 알다시피 결국 원·하청 관계를 통해 여러 하청기업에 전가된다.

이재용을 구속 처벌하면 산업 내 부당내부거래, 하청으로의 손실 전가, 정경유착 등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현재 삼성 외에도 현대자동차·롯데·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재벌이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있다. 다른 재벌도 삼성과 비슷하게 경영권을 승계한다. 삼성이 바뀌면 다른 재벌도 바뀐다. 이재용 구속 처벌은 한 재벌의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를 개선하는 구조개혁이다.

이재용을 구속한다고 삼성의 투자가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투자 합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 역사를 보면 총수가 나선 투자치고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이건희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만든 삼성자동차, 정주영이 고집을 부려 세운 현대전자, 김우중이 허세로 확장한 대우 해외 공장들이 97년 외환위기를 만들었다. 최근 연구들은 재벌 총수 성공신화에 과장된 측면이 많고,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총수가 사라지면 미국식 주주 이익 중심 경영이 대기업에 도입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부분에서는 국민연금이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 관련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다. 국민연금이 의지를 가지면 엘리엇 같은 외국계 투기자본의 국부유출 기도를 막아 내고, 삼성이 거시적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경영을 하도록 충분히 개입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경영권 승계에 털리는 것보다 삼성이 제 역할을 하도록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국민에게도, 삼성에게도 이득이다.

요즘 촛불집회에 나가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나눠 주는 유인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도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주장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라서 삼성에 찍히면 고용이 더욱 불안해질 텐데도 목소리를 높인다. 무노조를 가훈으로 삼는 이재용 일가가 사라져야 차라리 고용이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재용은 삼성 가족에게도 불행이다. 이재용이 구속 처벌돼야 국민이 행복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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