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설립 과정에 회사측이 개입했다"며 설립을 취소한 샤프에비에이션케이 기업노조에 설립신고증을 다시 교부했다. "서류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신규노조는 이름만 다를 뿐 대표자까지 같았지만 노동부 조치로 기존에 누렸던 지위를 회복할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로 회사노조 때문에 6개월여 동안 교섭권을 인정받지 못했던 공공운수노조 샤프항공지부 처지는 위태롭게 됐다.

12일 노동부와 샤프항공지부(지부장 김진영)에 따르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이달 7일 ‘우리들의샤프케이노조’에 노조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기업노조에는 지난달 14일 설립신고증이 취소된 샤프에비에이션케이노조와 같은 직원이 노조 대표자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서울지방노동청은 "기업노조 설립 과정에 심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설립 과정에 회사측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6개월 만에 교섭 시작했지만

샤프에비에이션케이에는 지부만 남게 됐다. 당연히 교섭대표노조는 지부였다. 이런 상황은 며칠 가지 못했다. 회사노조 설립신고증이 취소되고 나흘 뒤인 지난달 18일, 회사노조 위원장이 노조 이름을 바꿔 다시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고 20일도 안 돼 이달 7일 합법적인 노조 지위를 다시 얻었다. 설립신고증은 이달 7일 나왔다. 새로 설립된 기업노조는 신고증을 받은 다음날인 지난 8일 회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기업노조는 “당 노조는 노동자의 과반이 가입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의 지위를 겸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섭대표노조라는 말인데, 곧 회사노조를 이어받았다고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아무개 기업노조 위원장은 "이전 노조 설립과정에서 사용자가 개입한 것은 몰랐던 부분"이라며 "설립이 취소돼 신생노조로 다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노동청 관계자는 “서류상으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신고증을 교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부 관계자는 "기업노조는 회사의 비호를 받으며 기존 조합원들을 재가입시켰다"며 "취소된 노조와 새로 만든 노조의 위원장은 동일인물이고 주요 간부조차 자리만 바꿔 그대로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 민주노조의 교섭권한을 무력화시키는 반복되는 탄압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복수노조 제도 악용한 교섭권 박탈 반복 우려

회사노조 설립신고증이 취소된 뒤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던 지부는 상황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까 봐 우려하고 있다. 항공기 지상조업 업체인 샤프에비에이션케이의 노동자들은 연 3천600시간에 달하는 초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했다. 직원들은 올해 5월21일 지부를 설립했다. 같은달 25일 지부가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자 이틀 뒤인 27일 서울노동청에 샤프에비에이션케이노조(회사노조) 설립신고서가 제출됐다. 이후 기업노조 설립과정에서 사용자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회사 관리자가 노조 조합비를 책정하고 대표이사가 조합비 원조를 약속한 녹취록이 증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직원 과반을 조합원으로 확보한 기업노조가 교섭대표노조 권한을 행사했다.

지난달 14일 기업노조의 설립신고증 교부 취소 처분이 내려진 뒤에야 지부는 교섭권을 가질 수 있었다. 지부는 지난달 21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이날 현재까지 세 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노동부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노동자들만 불안에 떨게 됐다.

이런 사례는 비단 샤프에비에이션케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4월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유성기업노조 설립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설립 무효 판결을 받은 유성기업노조 간부들이 만든 새노조는 올해 5월3일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제도 보완 요구도 나온다.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기존 노조는 사용자 주도 노조의 설립신고증이 교부된 이후 부당노동행위에 대응하기가 어렵다”며 “노조의 자주성을 국가가 판단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사용자 주도로 설립한 노조인 것이 명백하다면 심사단계에서 제재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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