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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중 권력' 상태와 노동운동의 진로

박근혜·최순실 일파가 자행한 반국가 범죄행위의 증거가 언론을 통해 잇따라 공개됐다. 박근혜의 '사과'는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가을을 지나 겨울을 달구는 거리정치 참가자는 연인원 1천만명을 넘을 기세다. 4·13 총선으로 등장한 여소야대 국회는 극우 지배체제의 기반을 흔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무력화됐던 의회 권력이 점차 회복됐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일당 지배로 망가졌던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170석이 넘는 야당의 힘은 김기춘·우병우·황교안을 두목으로 하는 행정 권력에 밀렸다. 권력 자원에서 의회를 압도하고도 남은 대통령 중심제 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민중(people)의 힘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 일관되게 저항한 세력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이었다. 과학적인 전략과 현실적인 전술이 부족한 한계를 가지나, 민주주의와 노동권 파괴세력에 맞선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을 지킨 세월호 가족은 정세 변동에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다. '법의 지배'를 조롱하고 생명권을 짓밟고 기본권을 파괴할수록 반발의 압력은 높아졌고, 이는 오히려 공고한 억압체제에 구멍을 냈다. 비좁은 틈을 뚫고 터져 나오는 진실과 저항의 압력을 틀어막으려 '검사 출신 3인방'이 주도한 공작정치는 교활함과 비열함의 정도를 높여 갔지만, 이미 틈새가 벌어진 균열을 봉합할 순 없었다.

전국적 저항의 과정에서 다섯 갈래의 권력이 교차되고 있다. 첫째, 범죄자 박근혜가 행사하는 대통령 권력이다. 둘째, 외세와 재벌의 수족으로 놀아난 행정부 권력이다. 셋째, 여소야대로 강화된 의회 권력이다. 넷째, 탄핵 가결로 박근혜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 사법부 권력이다. 다섯째, 광장과 거리를 장악하고 의회를 압박해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민중 권력이다. 대통령·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권력 체제가 강고하게 유지되면서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민중의 권리와 이익은 강탈당하고 억압당했다. 4·13 총선으로 극우 새누리당의 발판이 붕괴되면서 입법 권력이 민주화되기 시작했다. 지배 고리의 균열은 민중이 주도하는 거리정치가 입법부 권력을 압박해 대통령 권력을 붕괴시키고 행정부 권력을 축소시켰으며, 이제 탄핵 결정권을 쥔 사법부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발전했다.

4·19 혁명과 87년 민주항쟁처럼 이번에도 민중의 진출과 거리정치가 우익 독재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정치학의 기본인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의 상호작용과 의존성이 다시 증명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가 외세와 재벌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할 가치인 이상,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는 서로를 밀어내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같은 동전의 양면일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질은 민중민주주의의 양에 비례한다. 당면 과제는 민중민주주의 확장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법의 지배 실현이다. 거리의 정치에서 행사되는 민중 권력을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 제도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진짜 대의정치(representative politics)를 만들어야 한다. 지배층의 이익을 수호하는 도구로 전락한 행정부·입법부·사법부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실현하는 국민적 제도(popular institutions)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대통령 권력은 치명타를 입고 붕괴했다. 행정부 권력은 여전하나 범죄자 수괴를 잃고 초라해졌다. 의회 권력은 광장과 거리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극우 가치를 수호해 온 사법부 권력은 민중이 주도하는 거리정치의 사정권 안에 놓였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중은 특정 조직이나 운동에 속하지 않은 무정형의 자발적 개인들의 집합이다. 이는 현 시기 민중 권력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박근혜 구속을 넘어 대한민국 리셋(reset)을 위해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광장을 장악하고 거리정치를 펼쳐 가는 민중, 극우 정당이 무력화되고 보수 정당이 주도권을 잡은 의회, 정통성을 잃어버린 행정부, 헌법재판소가 주도하는 사법부가 뒤엉킨 '사중 권력'의 힘겨루기가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권력투쟁 국면에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제때 내놓는 세력이 승기를 잡는다.

민주주의를 직장과 학교 등 생활 현장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사회 곳곳에 똬리를 튼 특권과 특혜를 일소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삶을 짓누르는 착취·폭력·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이를 위한 조직노동의 프로그램을 시급히 제출해야 한다. 노동자 권리보장과 이익개선을 중심으로 낡디 낡은 '박정희 체제'의 반동을 혁파할 운동 노선과 실천 과제, 그리고 과학적 전략과 효과적 전술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긴박히 요구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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