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병원측의 일방적인 전환배치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남대병원 수술실 이아무개(47)씨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이 간호사는 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간호사다. 사학연금공단이 그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하면서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될 전망이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5명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모두 산재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8일 “공단이 지난달 21일 이씨 산재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올해 3월부터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적용을 받는 탓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 간호사의 남편인 최아무개씨는 9월 공단에 재해보상급여를 신청했다.

“우울증 앓던 간호사에게 한마디 상의 없이 전환배치”

이번 사건을 대리한 노조 법률자문 공인노무사 A씨에 따르면 공단은 6월 병원측이 수술실 간호사에 대한 전환배치를 한 것과 이 간호사가 2012년 의료기관 평가준비로 인해 우울증을 앓은 점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산재를 승인했다. A씨는 “인사는 회사의 고유한 권한이지만 우울증을 앓았던 이 간호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환배치를 내려 이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구강외과 수술실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다. 4월 병원은 수술실 간호사 5명에게 전환배치 사실을 알렸다. 간호사 B씨가 구강외과에 오기로 결정된 반면 이 간호사는 어느 과로 갈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부는 “이 간호사가 10년 이상 근무한 수술실을 나가는 것에 대한 심적인 부담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전환배치 제안을 받은 뒤 2012년 앓았던 우울증이 재발했다. 이 간호사는 의료기관 인준평가를 준비하면서 신입간호사 교육, 송년회 준비 등 각종 업무를 도맡았다. 전환배치로 우울증이 재발하자 이 간호사는 5월17일부터 6월17일까지 한 달 동안 병가를 냈다. 그리고 같은달 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인 최씨는 “산재가 인정돼 아내의 명예가 회복돼 다행”이라며 “전남대병원의 조직문화가 폐쇄적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발방지 위해 조직문화 문제 있다고 시인해야"

유가족의 바람대로 지부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병원에 수차례 요구했다. 노사 공동으로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해 사망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런데 조사위원을 두고 노사가 이견을 보였다. 노사는 조사위원 3명을 각각 추천하면 그중 1명씩 선정하기로 합의했다. 지부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3인을 제안했다. 하지만 병원측은 정신과 교수를 전문위원으로 선임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진상조사위는 사고 발생 6개월이 지나도록 출범조차 못했다.

노사 합의사항은 폭언·폭행 예방교육을 하고, 관련 캠페인을 하는 선에 머물렀다. 노사는 15일 산업안전위원회를 열어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한다. 지부는 병원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입장이다. 전환배치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테스크포스를 설치하자고 요구할 방침이다.

김혜란 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병원측은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잘할 테니 믿고 맡겨 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병원의 조직문화·근무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노사 모두 인정하고 개선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공단의 산재 결정은 직무상재해 여부만 결정한 것일 뿐”이라며 “병원은 직원교육과 상담실을 운영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진상조사위의 경우 노조측이 적합한 전문가를 추천하지 않아 조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전남대병원에서는 2005년과 2006년 수술실 간호사 2명과 소독기사 1명, 직원 1명이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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