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서 작업 중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의식불명에 빠졌던 배관공 조성호(46)씨가 다섯 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나눠 주고 생을 마감했다.

8일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에 따르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조씨는 전날 오후 12시30분 뇌사판정을 받고 두시간 뒤인 오후 2시40분께 사망했다. 가족들은 생전 고인의 의사를 따라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유족에 따르면 조씨는 5~6년 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조씨의 동생 조보견(41)씨는 "형님보다 아버님께서 먼저 시신기증을 약속했고, 저 역시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며 "형님의 마지막 뜻이라고 생각해 가족들이 장기기증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에서 장기기증 수술 후 고인의 시신은 대전 을지대병원 영안실로 옮겨져 안치됐다.

조씨는 지난달 29일 지름 70센티미터 배관 용접작업 마무리 정리정돈을 하다 용접 전 막아 놓은 스펀지(퍼지캡)를 제거하기 위해 배관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르곤 가스에 질식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찾지 못했다. 평택 성모병원에 옮겨졌을 당시 코마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씨 유족들은 보상문제와 별개로 시공을 맡고 있는 삼성엔지니어링과 전문건설업체인 한양ENG측에 평택 삼성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의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건설현장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산재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이번 아르곤 가스 질식사고 전에도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산재사고가 잇따랐다.

노조가 이달 7일 공개한 현장 사진을 보면 다수의 노동자들이 휴게실이 없어 컨테이너박스에 기대거나 바닥에 누워 쪽잠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현장에 1만5천여명의 노동자들이 투입되고 있지만 화장실부터 휴게실·탈의실·식당까지 이들을 수용할 만한 복지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에서 안전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조보견씨는 "오늘도 현장에 가 봤는데 노동자들이 그냥 흙바닥에 앉아 있거나 누워서 쉬고 있었다"며 "형님이 그런 환경에서 일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고, 누워서 쉬고 있던 노동자들도 계속 눈에 밟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형님은 유언도 못 남기고 황망히 떠나셨지만, 남은 분들은 더 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회사가 하루빨리 유족의 요구를 받아들여 차가운 냉동실에 누워 있는 형님을 편히 보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충남지부 관계자는 "8일 새벽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 현장 출입구에 분향소를 만들었다"며 "유족이 요구한 복지시설 확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장례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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