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재벌 청문회장에서였다. 청문회장 바깥에서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중소상공인들, 현대자동차 부품업체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재벌의 사설경비들에 막혀 피켓을 빼앗긴 데다 영정사진까지 부서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국회 안에서는 재벌 총수가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본회의장 바깥에서는 국회 경비가 아니라 재벌 총수들이 동원한 사설경비들에게 노동자들이 폭행당하는 상황이 지금 이 나라 현실이다.

검찰은 최순실씨를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재벌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요구했다고 했다. 재벌들은 피해자로 묘사됐다. 그 결과 최순실씨와 안종범씨에게는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강요·강요 미수죄 등이 적용됐다. 그러나 이달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재벌 총수를 구속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들은 재벌이 결코 피해자가 아니며 공범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청문회 자리에도 많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찾아와 재벌 총수들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라고 요구했고, 재벌 총수 처벌 요구에 대한 온라인 서명에는 3일간 6천여명이 동참했다.

이날 청문회에 출석한 재벌 총수 9명 모두 입을 맞춘 듯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내면서도 대가를 바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청와대가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다”며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행세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취지로 공익재단에 돈을 냈다”고 이야기하는 등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사안을 질문하면 “잘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답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박근혜 정권과 재벌의 유착관계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 있는데도 뻔뻔하게 부인함으로써 향후에 닥칠 특별검사 수사와 처벌을 피해 가려는 술수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건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은 손실규모가 4천억원이 넘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삼성 이재용은 수천억원대의 합병 이익을 챙기고 경영권 승계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삼성은 두 재단에 208억원을 지원하고 최순실과 장시호에게 94억원을 지원했다. 삼성은 300억원을 지원함으로써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봤지만, 시민들은 자신의 미래연금소득을 도둑맞았다. CJ와 SK·한화는 총수 사면이라는 혜택을 입었고, 결국 시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을 깨달았다.

재벌기업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밝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불법노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을 주문하면서 노동자 탄압 시도를 노골화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포항-광양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관련 규제완화를 주문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수입맥주 과세 개선, 아울렛 의무휴업 확대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결국 기업과 정부가 합작해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너뜨리며, 중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일을 자행한 것이다. 그들이 두 재단에 바친 돈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파괴하면서 만들어 낸 돈이다.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는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들 삶의 문제다.

이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려면 박근혜가 퇴진해야 하지만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기업은 여전히 정치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경제·노동정책을 좌우할 것이다. ‘재벌 총수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라는 전제 때문에 법도 그들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기업의 이윤논리가 사회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재벌의 단기이익 중심 행위가 사회 구성원의 고통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해 내부에서부터 기업의 이윤행위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자원이 집중 투여되고 있는 재벌대기업에 대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사회적 통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탄핵이 이뤄지더라도 광장에서 시민들이 계속 싸워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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