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노조 조직률이 높은 나라, 연간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낮은 나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것을 뜻한다. 지역구 선거 중심인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사회 전체가 선거제도 개혁에 매달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번 사태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선거제도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비례민주주의연대가 7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선거제도’ 토론회를 개최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현행 선거제도는 기득권 정당을 낳고,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정치에서 배제시킨다”고 말했다.

"노동자 없는 정치 끝내자"

하 공동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선거제도는 노동자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지적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2015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1위부터 10위까지 국가 중 8곳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노조 조직률이 50%를 훌쩍 넘는다. 덴마크의 노조 조직률은 66.8%(2013년)다. 스웨덴은 67.3%(2014년)다.

지난해 기준 연간 노동시간이 1천371시간으로 가장 적은 독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운영한다. 벨기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른다. 벨기에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3.4%로 가장 낮은 나라다.

하 공동대표는 “2012년 기준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25.1%였는데, OECD 회원국 중 미국만 25.3%로 우리보다 높았다”며 “두 국가 모두 대표적인 소선거구제 국가”라고 말했다.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 체제를 만든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이 37.5%의 정당득표율로 절반이 넘는 153석을 차지했던 기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하 공동대표는 “20대 총선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농민은 한 사람도 없고, 회사원은 두 사람뿐”이라며 “1인당 평균재산이 41억원인 사람들이 불평등을 완화하고, 약자의 입장에 서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노동계와 시민사회에 적극적인 행동을 요청했다. 하 공동대표는 “최근 개혁에 성공한 뉴질랜드는 노조·시민단체·소수정당이 힘을 모아 양당제 구조를 깨뜨렸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치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보다 많은 노동자·시민이 나서 선거제도 개혁을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 한 달만 시위해 보라"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계가 ‘제2의 촛불운동’을 주도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나듯 정치·사회적 독식체제가 1대 99의 사회를 고착화하고 민주주의를 형해화했다”며 “노조 차원에서 활동가·조합원들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왜 필요한지, 노동자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교육·선전해 선거제도 개혁을 제2의 촛불운동으로 발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광범위한 여론 형성이 관건이라는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비정규직노조 조직률 제고,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등 친노동 정책 실현에 대단히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노동계가 조직력을 동원해 한두 달만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면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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