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재벌총수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을 내는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재벌 총수들은 한결같이 대가성을 부인하면서도 자금모금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여야는 재벌도 공범이라고 강조하면서 전경련 해체를 촉구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김성태)가 6일 국회에서 실시한 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대가성 부인

이날 청문회에서는 재벌 총수들이 박 대통령을 독대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입금한 행위의 대가성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은 “많은 국민은 두 재단을 지원한 것이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그룹의 안정적 승계를 위한 대가라는 의혹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에 문화나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많은 지원 요청이 들어온다”며 “단 한 번도 반대급부를 요청하면서 출연·지원한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건이 터진 뒤에야 미래전략실에서 보고 받고 알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재벌 총수들도 비슷한 취지로 대가성을 부인했다. 기부금을 내고 사면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최태원 SK 회장은 “당시 대가성으로 생각하고 출연하지 않았다”며 “사내 사회공헌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지 내 결정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출연을 요구받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직접 강요받아서 한 게 아니라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이었다”며 “고 이인원 부회장이 결정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증언도 이어졌다. 손경식 CJ 회장은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조원동 수석이) 이미경 부회장이 자리를 비켜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조 수석이 대통령 말씀이라고 전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재계에서 30년 이상 있었지만 청와대가 임원을 물러나라고 하는 상황은 처음 겪어 봤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단독으로 만났던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과 스포츠발전을 위해 기업들이 아낌없이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며 “당시에는 재단이나 출연 이야기가 안 나왔기에 정확히 무슨 의미였는지 못 알아들었다”고 주장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4년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는 통보를 받은 게 맞다”며 최순실씨와 불편한 관계 때문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정확히 대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재벌 총수 국정농단 세력의 공범”

재벌 총수들은 일관되게 기부의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재벌도 공범”이라는 매서운 질책이 이어졌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촛불민심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함께 재벌도 공범이라는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은 공범임을 인정하고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국민 여론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시대 변화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겠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28살이던 1995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원을 받았는데 지금 재산은 8조원에 달한다”며 “8조원이 만들어지는 동안 헐값·편법 인수·증여 시비에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드디어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댔다”고 비판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촛불집회에서는 ‘이재용 구속’이라는 피켓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민은 국정농단 공범이 여기 증인들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SK·엘지 “전경련 탈퇴하겠다”

재벌들로부터 돈을 거두고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했던 전경련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1988년 5공 청문회 때 출석한 재벌 총수 6명의 자식이 이곳 청문회에 나와 있다”며 “자식대까지 이어지는 정경유착 고리를 끊기 위해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미국에는 전경련 같은 단체가 없으며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로 변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은 “전경련 해체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전경련을 탈퇴하겠다”면서 “좋은 취지의 재단 같은 곳에 기부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또한 구시대 유물로 지적이 이어진 미래전략실도 해체하겠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SK 회장과 구본무 엘지 회장도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답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문화융성·스포츠발전을 위한 기업의 지원을 요청했고 이후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으며 최순실 일가에 개별적 지원이 있었다고 시인했다”며 “이 진술을 통해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했다는 사실이 확립됐고 따라서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밝혔다.

한편 국조특위는 7일 국회에서 최순실씨 일가를 대상으로 국정농단 의혹을 집중 파헤치기 위해 2차 청문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최순실씨를 비롯해 최순득·장시호·정유라·안종범·이성한·정호성·김기춘·우병우 등 주요 증인의 출석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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