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5천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됐다. 이른바 '최순실 예산'은 줄줄이 삭감됐지만 국회의원 지역구 챙기기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빛이 바랬다. 여야 3당은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보육지원) 예산의 중앙정부 일부 부담을 3년 한시로 정하는 대신 법인세는 올리지 않는 것으로 타협했다. 야권 일각에서 "너무 쉽게 타협했다" 또는 "민생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순실 예산 줄줄이 삭감=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를 열고 400조5천495억원의 2017년 정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제출한 400조7천억원에서 5조6천억원 감액된 뒤 5조4천억원 증액됐다. 전체적으로 2천억원이 순삭감됐다.

국정농단 핵심 세력인 최순실·차은택씨 개입 의혹이 제기된 창조경제·문화융성 분야 예산은 모두 삭감됐다.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은 애초 정부안인 1천278억원에서 779억원이 감액됐다. 국회는 부대의견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창조융합벨트의 향후 추진 또는 대체를 위한 방안을 검토하라"고 밝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위풍당당콘텐츠 코리아펀드 출자 예산 270억원과 원장 선임 과정에서 차은택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재외 한국문화원 예산 115억원도 삭감됐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내내 주력한 창조경제·문화융성 역점사업 예산 대부분이 깎이면서 동력을 잃게 됐다.

야당이 반대한 정책 예산도 삭감됐다. 의료 영리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은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사업은 전액(20억원) 삭감됐다. 의료시스템 수출지원 예산과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보건산업진흥원 중남미지사 신설 예산도 줄었다.

이와 함께 노동 4법 통과를 전제로 고용노동부가 포함시킨 구직급여 예산 3천262억원과 조기재취업 수당사업 예산 380억원이 삭감됐다. 조선업 사업장 고용유지 실적이 저조한 고용유지지원금사업(177억7천700만원)과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사업(103억1천600만원)도 삭감됐다. 중장년 취업성공패키지 지원예산은 참여자수 부족 등의 이유로 50억원 감액됐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에 활용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4천억원 늘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지역구의 순천대 체육관 리모델링 예산 6억3천만원, 순천만 국가정원관리 예산 5억원이 증액됐다. 같은 당 정진석 원내대표 지역구인 충남 공주·부여·청양군에는 공주박물관 수장고 건립 예산이 7억6천만원 늘어났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지역구 SOC 예산도 증액됐다. 광주-목포 호남고속철도 건설 예산 655억원, 남해양수산과학원 목포지원청사 신축비용 10억원, 목포시 보훈회관 예산 2억5천만원이 대표적이다.

◇누리과정 예산과 맞바꾼 법인세=최대 쟁점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은 3년간 한시로 특별회계를 설치해 전체 어린이집 누리과정 소요분의 45% 수준인 8천600억원을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정부와 교육청이 소요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만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약속했다가 집권 이후 누리과정 예산편성 책임을 교육청에 떠넘겼다.

그러면서 여야는 법인세율을 올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대신 소득세에 과표 5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세율은 현행 38%에서 40%로 인상했다.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포기하면서 반발이.터져 나오고 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당 지도부가 수와 명분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너무 쉽게 타협했다"며 "적어도 향후 법인세 정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 약속이라도 받아 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촛불 정국 속에서 재벌의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정작 재벌 특혜의 본체는 깃털 하나 못 건드렸다"며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도 논평을 내고 "국정을 포기한 박근혜 정권에 이어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교섭단체 3당마저 민생을 등졌다"며 "법인세와 소득세에 관한 3당 합의는 소득불평등 해소와 공평과세 실현, 복지재정 확충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분노한 국민 눈높이 맞추지 못한 예산안"이라고 혹평했다. 참여연대는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던 법인세율 정상화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결과"라며 "누리과정 예산의 일부 확보나 소득세율 최고구간 신설은 법인세율 정상화 실패를 덮기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