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전광판에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나는 잘못이 별로 없고, 내 발로 물러나지는 않겠다.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전해진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 담화의 요지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임기를 줄이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우회적으로 개헌을 요구한 셈이다. 그런데 개헌과 관련해 여야는 물론이고 각당 계파별로도 이해가 크게 엇갈린다.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는 순간 정치권은 이합집산에 나설 수밖에 없다. 다음달 2일 또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회로 공 넘긴 '피의자 박근혜' 사실상 개헌 요구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지난달 25일 1차 담화에 이어 이달 4일 2차 담화를 발표했던 박 대통령은 25일 만인 이날 3차 담화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채 5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미리 준비한 담화문을 읽고 춘추관을 떠났다. 기자들이 “최순실과의 공범관계를 인정하느냐”고 묻는 등 질의응답을 요청했지만, 박 대통령은 “오늘은 여러 가지 무거운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 경위를 소상히 말씀드리겠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이날 담화의 핵심은 대통령 거취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라며 사실상 무고함을 주장했다. 박 대통령을 이번 사태의 ‘몸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국민의 정서와 괴리가 느껴진다. 검찰 역시 최순실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주요 범죄 혐의와 관련한 '공동정범'으로 적시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국가 위한 공적사업, 사익 없다" 주장

국회가 박 대통령 요구를 받아들여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논의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개헌은 ‘개헌 발의(대통령·국회의원 과반)-개헌 의결(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개헌 국민투표(선거권자 과반수 투표·과반 찬성)’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절차가 까다롭고, 논의 과정에서 이해득실에 따라 정치권이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개헌을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헌 목적이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을 위한 명분 마련용인 점에 비춰 볼 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주류계열은 물론이고 비주류계열도 대놓고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야권과 새누리당 비박계열이 추진한 대통령 탄핵안 발의 역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새누리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는 이날 대통령 담화를 사실상의 '하야 선언'으로 평가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탄핵논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 3당은 박 대통령 제안을 ‘탄핵 피하기 꼼수’로 규정하고 탄핵소추 절차를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비박계열은 탁핵추진파와 탄핵중단파로 쪼개졌다.

정치권의 이 같은 반응은 예견 가능한 것이다. 이날 담화가 정치공학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담화가 대통령 즉각 퇴진을 바라는 촛불민심에 대한 진정성 있는 답변이라고 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정치권 향배와 별개로 촛불민심이 더욱 거세게 타오를 전망이다. 민주노총이 30일 대통령 퇴진 요구를 걸고 총파업에 나서는 등 노동계의 대응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정치권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변수는 민심이다.

한편 야 3당은 이날 국정농단 사건을 파헤칠 특별검사 후보자로 검사 출신 조승식·박영수 변호사를 추천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다음달 2일까지 이 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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