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하는 여성간호사와 간호조무사 10명 중 4명, 여성전공의 10명 중 7명은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의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가 빚어낸 반인권적 관행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3일 의료기관 여성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이른바 임신순번제 같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인권위가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전국 12개 병원 여성보건인력 1천130명을 조사한 결과 간호직군 39.5%와 여성전공의 71.4%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임신을 결정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간호직 61.7%와 전공의 77.4%가 “임신 중 시간외근로를 했다”고 밝혔고, 간호직 38.4%와 전공의 76.4%는 “임신 중 야간근로를 했다”고 답했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임산부의 초과근로를 강력하게 제한하고 있는데, 정작 여성 다수고용 사업장인 병원에서 해당 법조문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력부족 때문이다.

직장내 폭력과 성희롱도 병원 여성노동자들을 괴롭혔다. 간호직 11.7%와 전공의 14.5%가 신체폭력을 경험했고, 간호직 44.8%와 전공의 55.2%가 언어폭력을 당했다. 성희롱을 겪은 비율은 각각 6.7%, 16.7%였다.

인권위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개선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의료기관 여성종사자 대체인력 지원서비스 활성화 △모성보호 및 일·가정 양립 운영 매뉴얼과 폭력·성희롱 예방관리 가이드라인 제작·배포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의료기관 자체 여유인력 확보 지원방안 마련 △보건의료 분야 종사자 인권교육 실시 △의료기관 인증기준에 폭력·성희롱 예방관리 활동사항 신설을 제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폭력·성희롱 경험은 직장만족도나 우울증, 간호 오류 등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하면 의료서비스 질적 저하로 연결돼 환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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