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처음 사건을 전달받았을 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급식 노동자와 뇌지주막하출혈이라…. 무엇보다 사례가 많이 없어 어렵다고 생각했던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 즉, 목이나 어깨·팔·허리·다리 등이 아파서 문제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뇌심혈관계 질환 중 하나인 뇌지주막하출혈이라는 상병명이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 뵀을 때, 재해자는 말 그대로 우리네 어머님이셨다. 자식들을 위해 근 20년 동안 연차휴가 한 번 쓰지 않고 열심히 같은 일을 해 오신 지극히 평범한 분. 3월 초 학교가 개학해 2주 정도 지나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프고 구토와 어지럼증이 심해 응급실로 가니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이라 해서 당일 수술을 했다(뇌동맥류는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 중 특정 부위의 혈관벽이 얇아져서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한다. 뇌지주막하출혈은 어떤 요인으로 인해 뇌동맥류가 터지면서 뇌를 감싸고 있는 지주막 아래로 출혈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팔다리가 아파도 아이들이 더 클 때까지만 참자면서 일한 게 이렇게 돼 속상하다며 선하게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는 분께, “제가 조금 알아봤는데 이런 건은 산재 인정이 좀 힘들다면서요?” 하고 묻는 분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근로복지공단 지침에 의하면 간단히 말해 ‘과로로 인한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가 문제될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과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에 따르면 돌발적 사건 또는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24시간 이내),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1주일 이내),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12주 이상)를 기준으로 육체적·정신적 부담 요인을 파악하고 그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이 업무상질병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학교급식 노동자들에게 ‘과로’란 어떻게 평가돼야 할까. 시행령과 고시 등의 기준에 따르면 업무상 부담 요인으로 ‘장시간 노동’ 존재 여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데, 1일 노동시간이 8시간 정도고, 주 5일 근무에 개학 이후 일을 한 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뇌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한 위 조합원의 경우는 외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았다고 봐서 업무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업무가 다량의 음식을 만든다는 특성상 그 자체로 신체에 많은 부담을 주는 작업에 해당한다는 연구와 논의 등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을 둘러싼 ‘조리실’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검토는 많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조리실 내부의 온도와 습도, 공기 오염도에 대한 구체적 조사나 연구 자료는 찾기 어렵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은 '대기오염물질과 심혈관질환 유병률'과 관련해 질병관리본부의 지역사회 건강조사(2008~2010년)에 나온 약 70만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미세먼지·이산화질소·일산화탄소 등의 수치가 높아질수록 고혈압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또한 미세먼지의 경우 심혈관 질환을 비롯해 뇌경색 및 뇌출혈 위험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높은 습도가 심장에 무리를 가해 심근경색과 심장발작·뇌졸중 발병 위험률을 높인다는 연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이 일하는 조리실은 조리기구의 열기, 뜨거운 기름, 가스, 물기로 가득해 온도와 습도가 높다. 환경부에 따르면 음식을 조리할 때 미세먼지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급식 조리실과 같이 대량의 음식을 한 번에 짧은 시간 안에 조리할 경우 어느 정도로 공기가 오염되는지, 높은 온도와 습도가 함께할 경우 공기 오염이 얼마나 더 심해지는지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더욱이 급식 노동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으며, 하반신 이상까지 올라오는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는데 실제로 체감하는 온도와 습도, 공기의 탁함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일한 분들이 많다.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에 장기간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고온·다습·공기 오염 등의 열악한 물리적 작업 환경에 노출된 기간도 길다. 그렇다면 이 모두를 고려한 ‘과로’ 기준이 필요할 것이며,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 일하다가 또는 일과 관련돼 다치거나 아프면 당연히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사회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산재 인정 여부에 대해 재해를 입은 당사자가 미리 고민하고 지레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그 원칙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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