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28일 청년희망재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국회가 지난 1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의 건을 의결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특검과 국정조사로 쏠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르·K스포츠재단의 판박이’로 불리는 청년희망재단 관련 의혹이 특검이나 국정조사에서 밝혀질지 주목된다.

9·15 노사정 합의 직후 일사천리 모금
“쉬운 해고 등 노동개혁 대가 의혹”


청년희망재단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거액의 펀드·기부금으로 설립되고, 정부가 모금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과 비슷하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비리의혹이 불거지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쉬운 해고나 쉬운 임금삭감 같은 노동개혁을 대가로 재계로부터 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쏟아졌다.

대기업들에게 노동개혁을 포함한 대가를 줬다면 청년희망재단도 미르·K스포츠재단 못지않았을 것이라는 게 야당 의원들과 노동계의 인식이다.

시점으로 보면 청년희망재단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준거였다고 할 만하다. 일단 규모부터 크다. 기금액이 800억원에 미치지 못한 두 재단과 달리 청년희망재단(청년희망펀드)에는 올해 10월까지 1천450억원이 모였다. 지난해 9월21일 박근혜 대통령이 2천만원을 기부한 뒤 이건희 삼성회장의 200억원을 시작으로 대기업들의 기부가 잇따랐다. 지난해 말까지 3개월여간 모인 돈이 무려 1천238억원이다.

청년희망재단 설립 전후 과정을 보면 의구심은 더 커진다. 지난해 9월13일 노사정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합의안을 마련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노사정 협상은 이듬해 4월 결렬됐다.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결렬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협상이 재개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꾸준히 노동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해 7월21일 국무회의에서 노사정 협상 재개 필요성을 언급하더니 급기야 8월6일 대국민 담화에서 공식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그는 노사정 협상 재개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대국민 담화 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돌연 복귀했다. 한국노총도 8월27일 협상에 복귀했다. 노사정은 보름 만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9·15 노사정 합의다.

노사정이 합의안 조인식을 했던 9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청년일자리 관련 펀드를 제안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다음날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부처 차관들과 청년희망재단 설립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이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포함해 이른바 노동 5법을 발의했다. 마치 각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그 각본이 일부 드러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 과정에서 대국민 담화 10일 전인 7월24일과 25일 박 대통령이 재벌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개최했고, 대통령과 재벌총수 7명이 독대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오간 정황도 밝혀졌다. 결국 3개 재단이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첫째는 청년희망재단이다.

기부금 모금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지난해 9월21일 박 대통령이 2천만원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했다. 이미 펀드가입을 받을 5대 시중은행이 정해졌고 가입신청서까지 준비된 상태였다. 한 달여 뒤인 10월21일 이건희 회장이 200억원을 낸 것을 필두로 현대자동차·LG·롯데·한화·SK 총수들의 기부행렬이 이어졌다.

대기업들의 고액기부가 막바지에 달할 무렵인 올해 1월13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기간제 사용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 4법 통과를 제안했다. 특히 파견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같은달 22일 노동부는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당시는 재계가 요구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포함해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면서 대통령이 서명운동까지 하던 때였다. 청년희망재단 기부를 대가로 노동개혁을 포함해 재계의 민원을 들어준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배경이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들의 기부가 거의 끝나 갈 때 노동부는 2대 지침을 발표하고, 기획재정부는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 관련 지침을 시달했다”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순수 민간재단이라더니…
정부가 사업계획 마련, 홈페이지도 제작


올해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청년희망재단 설립 전에 노동부와 산하기관 직원들이 재단 설립TF에 파견된 사실이 논란이 됐다. 순수 민간재단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청년희망재단은 외견상 민간재단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재단은 지난해 10월14일 발기인총회를 열고 같은달 19일 출범했는데, 그 전부터 정부가 재단 설립과 사업계획 수립을 주도했다.

노동부와 산하기관 직원들은 10월5일부터 파견근무를 시작했고, 황교안 국무총리와 이기권 장관은 같은달 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재단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재단 1차 이사회가 출범일인 19일 열렸는데, 이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정부가 사업계획을 확정해 발표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28일 열린 3차 이사회에서 한 이사는 “이사회에 상정도 안 하고 사전협의도 없이 언론에 사업계획을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 무시당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움직임도 비슷했다. 문광부는 청년희망펀드 홍보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외부업체와 1억2천만원짜리 용역을 체결했다. 지난해 9월30일부터 홈페이지를 직접 운영했다. 재단이 홈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같은해 11월30일이었고, 홈페이지 제작비용은 재단이 부담했다.

문광부는 올해 2월 업무보고에서는 청년희망펀드를 사용한 사업을 아예 정부 사업처럼 발표했다. 관광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에 “청년희망펀드를 활용해 청년 고품격 문화역사 관광통역안내사를 양성할 것”이라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이런 과정을 보면 재단이 순수 민간재단인지 정부 산하기관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정부는 청년희망재단이 정부 관련 기관이라는 인식을 경계하면서도, 향후 정부 관계자들이 재단운영에 참가하는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19일 열린 재단 1차 이사회에서 보고된 ‘청년희망재단 발기 개요 및 준비상황’ 문건에는 재단 임원에 대해 “민간 주도의 자율적 운영을 위해 발기인들이 당연직 자격이 아닌 자연인 자격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고, 향후 재단이 활성화되면 정부 인사들의 참여 여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문화창조융합벨트와 얽힌 사업
차은택·송성각·이인화와의 관계는?


청년희망재단과 관련한 의혹 중 설립과 기부금 모금 배경만큼 관심을 받는 것은 차은택씨를 포함한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들과의 연관성이다. 재단 설립 초기부터 재단 사업은 차씨나 그 주변 인물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정부 문화융성 사업 또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과 얽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노사정 대화 재개를 요구한 지난해 7월21일 국무회의에서는 미르재단을 암시하듯 “문화융성 틀을 만들라”는 언급이 처음 나왔다. '노동개혁=청년고용'이라고 강조하며 청년희망재단을, 문화융성 틀로는 미르재단을 고민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청년희망펀드와 미르재단 모금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됐다. 같은 도화지에 두 재단을 함께 그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실제 재단과 정부는 각종 회의 문건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문화창조융합벨트와의 연계, 문화창조융합센터와의 협업”에 초점을 맞췄다.<본지 11월7일자 2면 ‘차은택씨 청년희망재단에도 손 뻗쳐-문화창조융합센터·청년희망재단 개입시도 정황 드러나’ 기사 참조>

이와 관련해 장의성 재단 사무국장은 “재단 사무국이 꾸려지기 전에 나온 얘기들이고, 지난해 12월 재단이 사업계획을 확정한 뒤에는 문화창조융합벨트나 문화창조융합센터와는 무관하게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에도 문화창조융합벨트 관련 사업은 계속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청년희망재단은 올해 2월24일 ‘청년인재양성과 일자리 창출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이 차은택씨의 포스코계열 광고사 강탈시도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송성각씨다.

진흥원과 재단은 업무협약에서 두 기관의 사업을 연계해 문화창조벤처단지·콘텐츠코리아랩에 입주한 기업·청년들과 일자리 연결사업을 하기로 했다. 문화창조벤처단지는 문화창조융합센터와 함께 문화창조융합벨트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문광부의 올해 업무보고에서도 청년희망재단과 문화창조융합벨트 간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문광부는 1월18일 발표한 업무보고에서 “청년희망재단과의 연계를 강화해 문화창조벤처단지가 청년일자리 창출의 전진기지가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청년희망아카데미 배출 인력과 문화창조벤처단지 기업 간 인재를 연계하고, 청년희망아카데미 출신 창업 희망자에 대해 문화창조융합벨트를 통한 창업과 인큐베이팅을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재단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업무협약이 문광부 사업계획의 연장선에서 추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차은택씨와 함께 대통령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을 지낸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가 올해 7월까지 재단 이사를 지낸 사실도 관심을 끈다. 류 교수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대리시험을 도운 의혹도 받고 있다.

재단은 “청년희망재단이 문화창조융합센터와 협업해 문화콘텐츠 관련 강좌를 개설하는 계획을 세웠고, 지난해 11월 시범강좌를 실시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이달 7일 당시 강좌를 맡은 작가들을 공개하면서 “별도 강의료 지불 없이 재능기부로 진행했고, 문화창조융합센터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류 교수가 시범강좌 첫 강의를 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만을 놓고 차은택씨와 주변 인물이 재단을 통해 부당하게 이권에 개입하거나, 재단 기금이 이들의 이득을 위해 쓰였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한국노총이 200억원에 이르는 올해 재단 예산의 세세한 지출내역과 거래업체명, 500만원 이상 기부한 공직자 명단, 재단 설립부터 현재까지 파견받은 공직자 담당업무와 활동비 지출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다. 재단은 자료공개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득 의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1천400억원의 재단 기부금이 어떤 사업에 누구를 위해 사용됐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며 “특검이나 국정조사에서 기금조성 배경과 비선실세 연루 여부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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