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배출 사업장이 밀집한 지역 노동자와 주민 안전을 위해 화학물질 관련법에 ‘저감대상 고독성물질’ 개념을 명시하고, 해당 기업 사업주로 하여금 발암물질 사용량·배출량 저감계획을 수립하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환경부·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가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발암물질 배출저감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은 “화학물질 누출에 의한 폭발사고, 발암물질 배출에 따른 주민건강 악화, 발암물질 사용에서 비롯된 노동자 직업성 암 발생 문제의 근본원인은 기업의 독성물질 사용”이라며 “기업이 고독성물질 사용을 줄여 나갈 수 있도록 관련법에 ‘발암물질 저감’이라는 목표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주민, 사업장 배출 발암물질에 무방비 노출



올해 7월 광주 하남산업단지 내 세방산업이 조업을 중단했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결과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재 광주시가 나서 세방산업 TCE 배출 관련 검증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지역사회 관심은 하남산단의 발암물질 취급 현황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소재 엘지화학은 지난해 7월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2014년 환경부 화학물질 배출량 조사 결과 전국에서 발암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에 꼽혔기 때문이다. 엘지화학은 올해 상반기까지 2013년 염화비닐 배출량 대비 50% 이상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긴 대책을 내놓았다.

환경부가 2008년 사업장별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한 데 이어 최근 충격적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으면서 화학물질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 화학물질로 인한 각종 문제는 일상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강병원 의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발암물질 전국지도’에 따르면 고독성물질 배출 사업장 1천314곳 주변 1마일(1.6킬로미터) 이내에 살고 있는 주민은 740만명, 1킬로미터 이내 거주 주민은 320만명에 달했다.

김신범 실장은 우리나라 발암물질 배출 관련 문제를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발암물질 배출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고, 발암물질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없고, 발암물질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없고, 발암물질 목록이 없고, 그 결과 주민과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독성물질저감법(TURA)을 제정한 뒤 나타난 변화에 주목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저감대상 고독성물질' 개념 추가부터



1989년 제정된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독성물질저감법에 따르면 주정부가 정한 독성물질(발암물질) 목록에 있는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주는 취급량과 배출량을 정확하게 신고하고, 해당 물질의 사용 저감계획서를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사업주가 저감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저감계획 이행은 자율에 맡기는 대신, 주정부가 독성물질 취급사업장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시민단체들은 독성물질 사용량을 줄이지 않은 기업을 꼼꼼하게 감시한다. 주정부가 지역 대학과 협력해 독성물질 저감을 지원하는 연구소를 설립한 점도 눈에 띈다. 이 같은 시도는 뚜렷한 성과로 나타났다. 1995~99년 사이 미국 전역에서 15.7%의 발암물질이 줄었는데, 매사츠세츠주에서는 같은 기간 48%나 감소했다.

김 실장은 “매사추세츠주에서 독성물질저감법을 만들 때 저감계획 이행을 사업장 자율에 맡긴 것을 두고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이 ‘법을 잘못 만들었다’고 반발했지만, 이미 사업장의 독성물질 취급정보가 공개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문제기업’으로 찍히지 않으려고 성실하게 독성물질 사용을 줄여 나갔다”며 “우리나라도 기업과 주민·노동자가 상생하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저감대상 고독성물질’ 개념을 추가한 뒤 해당 물질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화학물질관리법에는 사업주에게 독성물질 배출량과 사용량 저감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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