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고용노동부 지침이나 지방정부 조례에 일터 괴롭힘에 대한 판단기준, 피해자 보호, 예방책을 담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소속 엄진령 공인노무사가 일터 괴롭힘을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제안이다. 일터 괴롭힘은 안정적 일자리 축소 등의 이유로 갈수록 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천여명의 응답자 중 49%가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터 괴롭힘에 대한 제도적인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쏟아지는 이유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NPO지원센터 주다 교육장에서 ‘일터 괴롭힘에 대한 노동법적 접근’ 토론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일터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의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이드라인으로 사회적 규율 나서야"

엄진령 노무사는 일터 괴롭힘을 ‘새삼스럽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러는 사이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경쟁 심화로 괴롭힘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일터 괴롭힘을 사회적으로 제어해야 할 때라는 주장이다.

엄 노무사는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력 약화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약자임이 지속적으로 확인됐다”며 “일터 괴롭힘을 규율해야 할 것으로 이름 붙이고, 사회적 가치를 형성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노동부·기업이 지침이나 매뉴얼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한 ‘일터 괴롭힘 대응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 서두에는 "인권이 침해되기 쉬운 일터에서 노동자 존엄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었다. 일터 괴롭힘은 “지위에 기반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근로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건강을 훼손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일터 괴롭힘인지 아닌지 여부는 “피해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엄 노무사는 “일터 괴롭힘은 반드시 반복적이어야 할 것 등을 요건으로 하지 않고, 의도성 역시 마찬가지”라며 “괴롭힘은 당사자가 존엄을 침해받고 건강을 훼손당했다는 주관적 인식으로 충분히 제기할 수 있고 여타 증거에 의해 뒷받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이드라인에서 기업이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일터 괴롭힘 목록을 작성하도록 했다. 일터 괴롭힘 대응기구 구성도 제안했다. 대응기구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징계 절차를 마련한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사용자에게는 의무를 부여하는 일터 괴롭힘 예방책도 가이드라인에 담겼다.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정부의 책무도 부여했다. 예컨대 정부가 일터 괴롭힘 방지를 위한 사회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노동자 직장이동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 노무사는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 개입을 통해 기업과 사회의 인권 수준을 함께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노동자에 대한 지원과 관련 법률 정비 등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중지권 부여하고
판결에서 노동자 피해 고려해야


산업안전보건법을 손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재광 노무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법률상 사업주 보건조치 의무 항목에 '업무 수행으로 인한 신체적인 피로·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를 포함하고, 노동자가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한다고 인식하는 순간 업무를 중단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원의 판단기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종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일터 괴롭힘과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가 있을 때 법원은 과거 KT 내부문건 사건에서 보듯이 괴롭히기 위한 것이라는 확실한 의도가 증명돼야 불법성을 인정한다”며 “기업의 의도보다는 노동자에게 끼친 영향을 중요하게 고려해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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