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산업 고용구조는 유령이 배를 만들다 진짜 유령이 되거나 유령같이 사라지는 형태로 짜여 있다."

조선산업을 깊이 들여다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고용형태를 특정하기 어렵고 인원조차 파악하기 힘든 물량팀·돌관팀 같은 기능인력들이 배를 만드는 주력 일꾼인데, 이들 다수가 위험작업에 내몰려 산업재해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고 인력조정이 시작되면 누가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이들부터 해고되고 있어서다.

물량팀을 해체하고 사내하청업체를 대형화하는 한편 핵심 기능인력은 원청 정규직으로 흡수하면서 기능인력들의 숙련을 향상하는 것만이 한국 조선업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 낼 장기적 대안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16일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고용정보원 전문연구가들은 “다단계 하청과 외주화가 만연한 조선업 고용구조가 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구조조정 시기일수록 핵심기술 보전과 숙련 향상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경쟁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치고 내쫓기는 조선업 주력일꾼들

조선업 핵심 배후지로 선박블록을 생산하는 전남 대불공단에서는 사무영업직 외에는 정규직을 찾기 힘들다. 블록생산업체들이 기능직 인력을 직접 채용하지 않고 여러 사내협력업체를 동원해 물량에 따라 인력을 투입했다 뺐다 하는 식으로 생산을 이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1만1천여명이 블록생산 노동자로 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공단 내 고용보험 가입자가 사무직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해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이를 “한마디로 유령들이 일하면서 물량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라고 표현했다.

이들 유령은 노동강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에 주로 투입되고 있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한 대형조선소 기능인력 고용형태를 분석한 결과 발판공정(100%)·후행도장(95.4%)·해양전기(95.4%)·해양관철(93.6%) 같은 고강도·위험작업에는 사내하청 비율이 높았다. 반면 상대적으로 업무가 수월한 생산지원 공정은 사내하청 비율이 38.8%에 불과했다.

사내하청·외주 노동자들의 산재사고 비율 또한 높은 편이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에서는 산재사고로 13명이 사망했다. 이 중 1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조선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가장 먼저 사라진 이들도 유령이라 불리는 사내하청·외주인력들이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조선업 고용인원(20만3천여명)의 10%가량인 2만여명이 고용조정됐다. 이 중 89%인 1만7천900여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조선산업은 구조적 위기를 사내하청에 대한 쥐어짜기와 임금삭감으로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량팀 해체·핵심인력 정규직이 대안

조선산업은 경기악화에 따른 물량축소와 과잉설비로 인한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정부 도움을 받아 선박 발주(수주)량을 늘리고 과잉 설비·인력 축소 혹은 무급순환휴직을 통한 고통분담을 하되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물량에 따라 정처 없이 일터를 옮겨 다니는 임시·일용직 집단인 물량팀을 없애고 사내하청업체를 대형화(이정희 부연구위원)하자고 제안했다. 또 이 과정에서 핵심인력을 원청 정규직으로 흡수해 기술력을 유지·향상해야 조선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뒤이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숙련 향상을 위해 직무급 또는 숙련급으로 임금체계를 전환하고 기술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규식 선임연구위원도 “숙련 중심 노동시장 구축이 조선산업의 중장기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노동연구원과 고용정보원은 17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고 심도 있는 방안을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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