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지훈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대상판결 : 대법원 2016.11.10 선고 2014두45765 판결


1. 사건의 경위

A재단은 사회적 일자리 지원사업 등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이다. B는 A재단에 2010년 10월26일께 입사해 사회적기업 설립지원팀장 등으로 근무하던 기간제 근로자인데, A재단은 2012년 9월24일 B에게 근로계약 기간이 종료된다는 통보를 했다.

이에 B는 이 사건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는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3년 1월24일 정당한 계약기간 만료 통보라고 봐 B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가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을 하자, 중앙노동위는 2013년 5월22일 B의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부당하게 근로관계를 종료했다고 판단해 B의 재심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어서 A재단은 이 사건 재심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은 A재단의 청구를 인용해 B에 대한 이 사건 통보가 정당하다고 봤으나,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A재단의 청구를 기각(이 사건 통보가 부당해고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단은 다시 상고했다(이상 같은 필자의 2014년 12월2일자 판례리뷰 인용).

2. 대법원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이달 10일 판결에서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어 근로자에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합리적 이유 없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의 전환을 거절하며 근로계약의 종료를 통보하더라도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고, 그 이후의 근로관계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 것과 동일하다고 봐야 한다”며 A재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시행된 2007년 7월1일 이후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기간제 근로자에게도 갱신기대권 내지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인정된다는 최초 판결로서 의미가 있다(갱신기대권과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지 해당 판결이 설시하지는 않는다).

대법원 판결 이전 과거 하급심은, 기간제법 시행 이전에 체결된 기간제 근로계약에 비해 기간제법 시행 이후에 체결된 기간제 근로계약의 경우 총 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하게 되는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판결해 왔다. 그 이유로,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총 근로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기간제 근로자는 기간제법 제4조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게 되므로, 기간제법 시행 이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의사와 동기는 ‘2년 만료 후 퇴직’을 예정하고 있었다는 점이 주된 근거로 제시된다(이 사건에서 1심 서울행정법원은 이와 같은 이유를 들어 기간 만료 통보를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급심 법원의 법률 해석에 의할 때는, 기간제법 시행으로 인해 기간제 근로자들이 갱신기대권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데,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된 기간제법이 오히려 기간제 근로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원심(서울고법)은 “기간제법 시행으로 사용자가 2년의 기간 내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고,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그 기간제 근로자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되더라도, 위 규정들(기간제법 제4조1항 및 2항)의 입법 취지가 기본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하려는 데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제법 시행이 곧 재계약의 정당한 기대권 형성을 막는다거나 이미 형성된 재계약 기대권을 소멸시키는 사유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고, 대법원 역시 같은 취지에서 기간제법 제4조 등의 규정에 의해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형성이 제한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대법원의 위와 같은 기간제법 제4조 등에 대한 해석은 법률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볼 때 당연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새로운 법리를 도입하거나 복잡한 논증을 한 것도 아니다. 판결은 기간제법을 해석하면서 같은 법 제5조·제8조1항·제9조1항 등의 규정 취지와 앞선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기간제법 제4조 등에 의해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 형성이 방해받지 않음을 선언하고 있다.

대법원이 정당하게 기간제법을 해석했지만 위 판결에 따라 근로자들이 기간제법을 통해 충분히 보호되리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물론 기간제법에 대한 진일보한 해석이지만, 이로 인해 모든 기간제 근로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권 내지 갱신기대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판결의 의미에 대해 과잉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사건 A재단과 근로자 B 사이에서는, 근로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부 규정이 있었고 재단이 실제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과거 사실들과 전환 과정에서 기간제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 평가 절차 등이 존재했기 때문에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사건의 근로자 B는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자들의 근로 현실보다 나은 조건에 있었고 그러한 조건이 이번 판결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일반 사업장에서 통상적인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약속이나 기대가 거의 없으며, 그들만을 위한 정규직 전환 인사평가 절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판결 이후에 사용자들은 원래 존재하고 있던 인사평가마저 없앨지도 모를 일이다. 기간제 근로자는 계약기간 2년이 경과하면 말없이 회사에서 짐을 싸야 하는 형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애초에 법률이 문제였다.

3.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기간제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2007년 7월1일 시행된 기간제법은 법률의 문언과 달리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데 무력했고, 지난 10년간 오히려 기간제 근로자 등을 양산하는 현실에서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기간제법이 무력했던 이유로써 법률 자체의 문제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사유를 제한을 하지 않고 사용기간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정된 것을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 근로기간을 정하는 방식은 예외로 하고(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기간제 근로계약이 가능한 것도 일부 사업장과 업종으로 제한했어야 했는데, 기간제법은 거의 모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폭넓은 기간제 근로계약을 가능하게 했다.

기간제법이 2006년 12월께 국회에서 입법될 당시는 노무현 정부 아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던 시절이다. 당시 입법은 여야 합의 하에 매우 평화롭게 진행됐고,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을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당과 단체는 민주노동당(현 정의당 등)과 민주노총이 유일했다(당시 한국노총은 사용사유 제한 입장을 고수하다, 입법 직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사유 제한 삭제 안을 돌연 받아들인다.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이용득 의원이다).

입법자들이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기로 했던 표면적인 이유는 노동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져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사유였다. 당시 정부·여당이 기간제 근로에 대한 규제를 처음으로 신설하면서 사유 제한까지 하는 것은 ‘노동시장에 큰 파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전체적으로 고용감소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07년 법 시행 이후 10년 가까이 경과한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나는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2016년 한국을 가능하게 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기간제법’이 제법 큰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다. 물론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과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기간제법 등 노동법 개정 자체의 효과만으로 비정규직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경제와 법률 영역에서 사회 양극화를 초래한 것은 기간제법을 위시한 노동법 개악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 체감과 다르지 않게 통계상으로도 확인되는 한국의 노동환경은 비참하다.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배 수준(22.4%)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OECD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 등).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 비중은 14.7%로 OECD 1위고, 근로자들의 근속기간은 평균 5.6년에 불과해 OECD 25개국 중 가장 낮다(OECD ‘고용전망 2015’ 등).

무엇을 할 것인가. 20대 국회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률 개정을 준비해야 한다. 기간제법 등을 올바로 바꾸지 않고 헬조선을 탈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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