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을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와 협력해야 한다.”

피에르 아바르 OECD 노조자문위원회(TUAC) 선임정책자문위원의 말이다. 회원국 모두가 공유하는 핵심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OECD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국노총·민주노총과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공동으로 개최했다. ILO 가입 25주년·OECD 가입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심포지엄의 제목은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본 한국 노동기본권(결사의 자유를 중심으로)'이다.

참가자들은 이날 “한국의 노동권은 국제기준에 한참 모자란다”고 입을 모았다. 홍영표 환노위원장은 “산업화 70년,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고서도 노동기본권을 두고 토론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ILO 무시 지나치다"

알랭 펠세 ILO 방콕사무소 노동기준 및 노동법 선임전문위원은 한국의 ILO 협약 비준현황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이 8개 핵심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제87호·98호)과 강제근로 금지(제29호·105호)에 해당하는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국내 노동계의 ILO 제소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원·공무원·이주노동자·건설일용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다.

펠세 선임전문위원은 “경찰과 군인만 엄격하게 예외를 적용할 뿐 어떤 공무원도 결사의 자유 카테고리에서 배제될 수 없다”며 “복잡한 형태의 고용을 이유로 결사의 자유를 차별할 수 없다는 것이 ILO의 기본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ILO는 경제·사회·정책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파업을 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이유로 노조가 불만이 있다면 파업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노총(ITUC)은 노골적으로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제프 보그트 법률국장은 “한국 노동자의 노동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한국 노동자 권리지수는 세계 최저”라고 일갈했다.

그는 한국 노동계가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ILO에 끊임없이 사건을 제소하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예컨대 △교원과 대학교수의 노조 설립·활동 방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금 △정부·여당의 노동 5법 강행 추진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이 언급됐다. ILO가 2013년 2월 이후 현재까지 9차례나 중재 제안을 내놓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한 번도 이행하지 않았다. 보그트 법률국장은 “한국 정부는 ILO 지도부와 노동권 감시시스템에 대해 존중을 표시한 적이 없다”며 “개입 노력을 매번 무시하고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OECD 가입 당시 "국제노동기준 준수" 약속은 어디에?

아바르 선임정책자문위원은 한국 정부가 가입 두 달 전 OECD에 발송한 서한을 소개했다. 한국 정부는 서한에서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 가치, 특히 다원민주주의와 인권 존중 등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다”며 “노사관계 관련 법률을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에 관한 기본권 등 국제적으로 인정된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OECD는 한국 정부가 가입한 이듬해부터 2007년까지 특별감시감독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기준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점검했다. 이를 통해 △공무원 단결권 부정 △파업이 제한되는 필수공익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정의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유지 금지와 실업자 노조가입 금지 등을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것으로 파악했다. OECD는 이를 기반으로 2014년까지 한국 정부에 국제기준 이행을 권고했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아바르 선임정책자문위원은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이 올해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노동기본권과 집회의 자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OECD는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한국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ILO와 협력해야 한다”며 “모든 회원국 및 가입 희망국이 다원민주주주의와 인권존중을 비롯한 OECD의 핵심가치를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법 전면 개정" vs "충분하다"

한국 참가자들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려면 법률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LO협약 제87호는 군인과 경찰만을 각국 법률에 따르게 할 뿐 정부가 노동 3권에 개입하는 일을 완벽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으로 노조가입 범위를 한정하면서 많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노조 조직대상이나 조합원 범위는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법률로 그 자격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며 “노동선진국이라는 독일의 경우 노조의 조직·운영·쟁의행위를 규율하는 일반법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해 차라리 노조법을 폐지하고 헌법 제33조와 ILO 핵심협약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임금·단체교섭에 개입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노동부가 올해 3월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을 대상으로 단체협약 시정조치 계획을 발표했는데,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단협에 노동부가 개입하는 것은 노사자치주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행위는 노조의 인사경영참가에 대해 대법원이 합법적 효력을 인정한 것을 부당하게 개선 권고한 것으로 부당한 공권력 개입”이라고 비난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ILO 가입 25주년을 맞았지만 한국의 노동현실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며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도록 노조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실장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 △전임자임금 지급 노사 자율 결정 △교섭창구 단일화제도 폐지를 개정방향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법제연구실장은 “교섭창구 단일화와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고,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급여를 관행적으로 받으면서 사회적 비난을 받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우리나라 노동 관련 법률은 선진국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으며, ILO 회원국으로 가입한 뒤 노동법제가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꾸준히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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