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적정임금제를 도입한 미국은 한국보다 6배 이상 건설시장 규모가 큰데도 건설업 사망자는 연간 800여명으로 한국과 비슷합니다.”

피터 필립스 미국 유타대 교수(경제학)는 30개 주에서 운영하는 적정임금제의 장점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적정임금을 도입한 주에서는 2천달러 이상 연방정부 예산이 투입된 공공공사에 한해 적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해당 제도는 공사현장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직종별 최저임금 제도로 볼 수 있다. 공사 입찰과 낙찰 과정부터 적정임금을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1931년 데이비스-베이컨법(DBA)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건설산업연맹(위원장 백석근)은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갈수록 고령화되는 건설업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적정임금 도입을 요구해 왔다. 연맹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전문가인 필립스 교수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다. 필립스 교수는 “적정임금제를 시행하는 주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높다”며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가져가고 공사 발주처는 안전한 건물이 지어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적정임금제로 건설업 투명해져”

미국에서 시행되는 건설공사 중 공공공사 비중은 23% 정도다. 51개 주 가운데 30개 주에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건설업 원·하청사와 노조가 건설노동자 임금 수준을 제시한 뒤 노동부가 적정임금을 결정한다. 최저임금보다 높다.

미국 건설사는 원·하청 관계없이 임금지급대장을 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노조와 지역사회가 건설공사 원·하청 관계나 건설업체 투명성이 의심될 경우 정부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 건설업체가 임금을 체불하면 공공공사 계약을 따내는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당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건설공사가 다단계 하도급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청업체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하도급구조가 복잡해 원청업체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원청업체는 고용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하청업체 임금체불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일이 미국에서는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필립스 교수는 “건설업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프라산업인 만큼 공사가 부실하게 운영되면 발주처뿐 아니라 국민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건설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적정임금 도입이 불러온 긍정적인 효과

필립스 교수에 따르면 적정임금제를 도입한 주에서 건설노동자 생산성이 높게 나타났다. 제도를 도입한 주의 생산성이 그렇지 않은 주와 비교해 높다는 게 필립스 교수의 설명이다. 적정임금제로 건설노동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데다 숙련도 향상을 위한 훈련까지 이뤄진다.

적정임금 적용을 받는 공사의 경우 시간당 부가가치는 75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반해 적정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공사의 시간당 부가가치는 68달러에 그쳤다. 연간 평균소득도 달랐다. 적정임금을 받는 건설노동자의 연평균 소득은 4만5천315달러였다. 적정임금을 받지 않은 건설노동자의 연평균 소득 3만9천703달러와 비교해 6천여달러를 더 번 셈이다.

적정임금을 도입한 주는 건설업 사망률도 낮았다. 적정임금을 도입한 주의 인구 10만명당 건설업 사망률은 12.44명인데, 적정임금을 도입하지 않은 주의 사망률은 14.65명이었다.

필립스 교수는 “실리콘밸리의 바이오산업 공장 설비자재들은 다루기가 어려운데, 적정임금을 받는 숙련도 높은 노동자들이 참여해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며 “적정임금이 건설업의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여 건설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문중 대한전문건설협회 건설정책실장은 “건설노동자 임금은 숙련도와 공사특성 같은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 정해진다”며 “임금은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해야지 획일적으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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