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한국처럼 100만명의 국민이 거리로 나온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민중총궐기가 열렸던 지난 12일 오전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브라까이다오 프늑사까셈숙(21·사진)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브라까이다오씨는 왕실 모독죄로 투옥 중인 태국 노동운동가 소묫 프늑사까셈숙씨의 딸이다. 태국의 진보적 성향 주간지 <레드 파워> 발행인이기도 한 노동운동가 소묫씨는 왕실모독죄(태국 형법 제112조) 폐지를 주장하다 11년형을 선고받고 2011년 수감됐다.

소묫씨는 전태일재단(위원장 이수호)이 주는 제24회 전태일노동상 특별상 수상자다. 재단은 "태국 노동·민주화운동을 이끌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소묫씨에게 연대의지를 표명한다"고 설명했다.

브라까이다오씨는 아버지 대신 전태일노동상 특별상을 받기 위해 11일 한국에 들어왔다. 태국은 지난달 13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서거하면서 현재까지도 추모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부터 70년간 재위했다. 1년가량 애도기간이 끝나면 마하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왕위를 승계할 예정이다. 브라까이다오씨는 “태국 군부가 새 국왕을 통제하고 있어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변화를 기대하기도 희망을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인터뷰는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했다.

“푸미폰 국왕 서거로 아버지 출소 기대”

- 소묫씨가 수감된 지 5년째다. 근황은 어떤가.
“아버지는 5년째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읽는 것조차 금지됐다. 처음 수감됐을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하셨다. 왕실모독죄 폐지투쟁을 한 것을 후회하고 죽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지금은 6년만 더 있으면 출소할 수 있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수감생활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아버지가 한국의 노동운동가를 만나고 그들과 얘기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푸미폰 국왕 서거로 조기에 석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아버지가 실망할까 봐 걱정이다.”

- 아버지가 수감되면서 가족들의 삶도 변했을 것 같다. 어떤가.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투쟁을 하느라 집에 자주 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바빴다. 그러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면서 가족끼리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구명운동을 함께했다. 아버지가 수감될 때만 해도 나는 10대 소녀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잘 알고 있고 지지하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간다.”

“정치적 자유도 경제상황도 나빠져”

- 푸미폰 국왕 추모 분위기는 어떤가.
“지난달 방콕 통근버스에서 왕정을 모독한 여성이 시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태국은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면 커피 취향부터 왕실 얘기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구속된 뒤 군인들이 나를 미행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캄보디아에 갔었는데 군인 2명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교수들과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 마하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나.
“쌀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경기가 좋지 않다. 태국 군부는 노동운동가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데 힘을 쏟는다.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즉위해도 이런 상황이 변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군부의 입김이 더욱 강해지고 정국이 혼란스러워질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처럼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싸웠으면 좋겠다. 조금 더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다면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너무 아쉽다.”

- 소묫씨 구명운동은 어떻게 진행되나.
“아버지가 왕실모독죄로 수감되면서 유엔과 국제앰네스티 같은 국제기구에 도움을 요청했다. 촛불집회도 열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올해는 태국 정치상황이 불안정한 상태다. 당분간 지켜보려고 한다. 지금도 아버지를 돕는 친구들과 단체가 많이 있다.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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