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

하청업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와 철로 보수업무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업체에서 죽어 가는 노동자 대다수는 하청노동자다. 안전업무 외주화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외주화 금지 관련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국회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위험의 외주화 중단 필요성에 관한 기고를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다섯 차례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위험의 외주화. 새누리당조차 이 문제의 심각성과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실제 입법이나 대책 마련을 위해 나서야 할 국회와 관계부처는 뒷짐만 지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774억원 모금과 인가조치의 신속성에 비교하면 굼벵이 걸음을 걷고 있다. 다시 환기시키기 위해 몇 가지 사망사고를 예로 들어 보겠다.

먼저 제조업 대표 사례로 현대중공업을 들여다보자. 현대중공업 사측은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크레인 업무 분사·외주화를 밀어붙였다. 결국 9월1일부터 이들 업무는 현대중공업MOS라는 분사업체가 맡게 됐다. 그런데 크레인을 현대중공업MOS가 맡아서 운전을 시작한 첫날, 크레인 작업 중 작업자가 탱크에 깔려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크레인 신호수는 MOS 소속이었지만 운전기사는 MOS가 또다시 재하도급을 준 업체 소속이었고, 이날 운명을 달리한 작업자는 대국기업이라는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현대중공업 사내에서 현대중공업이 세운 생산계획에 따라 배를 건조하다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사망사고 전후방에 위치한 노동자들 중 현대중공업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공공부문 대표 사례로 철도를 살펴보자. 9월12일 영남권을 강타한 지진의 여파로 KTX를 비롯한 열차들이 지연운행을 하게 됐다. 같은달 13일 새벽 0시50분께 김천 인근에서 궤도 유지·보수에 투입된 하청업체(삼동랜드) 노동자들이 부산에서 서울로 지연운행되던 KTX에 치여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시각에 KTX가 들어오는지 미리 알려 준 사람도 없었고, 원청과 하청 사이에 이런 위험을 알려 주는 시스템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죽어 간 19세 청년노동자, 메탄올을 다루다 시력을 잃어버린 파견노동자, 에어컨을 고치다 고공에서 추락해 죽어 간 수리기사, 메르스에 감염됐으나 직접 고용한 직원이 아니란 이유로 관리대상에서 배제된 삼성병원 환자이송요원…. 이들 모두가 외주화된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이다. 이제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은 일상용어가 된 상황이다.

사고 유형도 대부분 동일하다. 재벌과 공공기관들은 지켜야 할 안전수칙과 장비를 보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업무 전반을 외주화한 뒤 안전 문제는 하청 책임으로 돌려 버렸다. 수많은 업무가 외주화되고 심지어 안전을 감시해야 할 업무마저 외주화시켜 버려서, 도대체 누가 어디에서 작업하고 있는지 파악하거나 관리되지도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사망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이들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안전시스템을 확충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건들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진국 새누리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2011~2015년) 주요 업종별 30개 기업에서 총 209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는 245명이나 됐다. 그런데 이들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가 212명으로 무려 86.5%를 차지했다. 지난해 수치만 놓고 보면 사망사고의 95%가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됐다. 단순 계산을 해 봐도 만일 이들 하청노동을 원청인 재벌 대기업이 직접 고용했더라면 80~90%의 사망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교사·공무원이 1년에 600명씩 산재사고로 죽어 나간다면? 과연 국가가 지금 건설노동자의 죽음처럼 대응할까요? 아마 국가비상사태라도 선포해서 대책을 세울 겁니다.”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건설노조 위원장이 1년에 수백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사망재해를 당하고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한 얘기다. 건설노동자 대부분이 하청과 재하청, 도급팀과 물량팀 등 다단계 하도급의 밑바닥에 위치한 비정규직이란 사실까지 전해 들었다면 졸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소식을 언론에서 접하도록 둘 것인가.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생명·안전업무에 정규직 직접고용을 강제하도록 법제화하는 일, 20대 국회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는 일과 함께 위험의 외주화도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때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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