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23살 네팔 청년 성검(사진)씨는 춤을 잘 췄다. 네팔에 있을 때 청소년에게 민속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친구들과는 비보잉·팝핀 같은 힙합댄스를 추며 어울렸다. 춤 얘기에 잠시 화색이 돌던 성검씨는 다시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춤은 못추겠지요?"

네팔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산재사고를 당한 이주노동자가 족지 전이술(발가락을 이용한 손가락 재건술)을 받았다가 손도, 발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일 오후 광주 광산구 광주민중의집(상임대표 윤영대)에서 네팔 이주노동자 성검씨를 만났다. 광주민중의집 네팔통역사인 우사씨가 통역을 도왔다.

한국서 대학 다니고 싶었던 네팔 청년…반년도 안돼 산재사고

성검씨는 습관적으로 왼손으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감싸쥐었다. 마치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것을 감추는 것처럼. 실제 그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제 손가락이 아닌 듯 퉁퉁 부어 있었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한국에서 돈을 모아 네팔로 돌아가면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안고 지난해 12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성검씨. 네팔에서 사업을 해 돈을 벌면 다시 학생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캠퍼스 생활을 누리고 싶었다던 꿈 많은 청년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입국비용이 싸고 치안 상태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주저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전남 강진의 벽돌공장인 ㄷ콘크리트 회사에서 일하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 4월28일, 한국에 온 지 채 반년이 되지 않던 날이었다.

콘크리트 기계를 청소하던 중 체인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휘말려 들어가면서 그의 손가락 관절 윗부분이 잘려나갔다. 인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 광주 소재 접합전문 병원인 ㄷ병원으로 이동했지만 잘려 나간 부위의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뭉개져 버린 탓에 접합수술은 할 수 없었다.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에서는 '우 무지 원위지 관절부 압궤성 절단상'으로 산재를 인정했다.

성검씨는 두 달 뒤인 6월 ㄷ병원에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잘라 손가락에 붙이는 족지 전이술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성검씨와 함께 병원에 간 회사 관계자에게만 설명했을 뿐, 정작 수술을 받을 당사자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안 됐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도 성검씨에게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 지 설명하지 않았다.

당사자에게 설명없이 발가락 잘라 손가락 재건

▲ 배혜정 기자

"의사선생님이 붕대를 감은 어떤 사람의 손을 보여줬어요. 수술하고 나면 이렇게 된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손이 붕대로 칭칭 감겨 있어 뭐가 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엄지발가락을 잘라서 붙인 건지, 검지발가락을 잘라서 붙인 건지 난 몰랐어요."

한국말이 서툴러 자신이 어떤 수술을 받는 지도 모른 채 수술대에 올라간 성검씨는 마취에서 깨어 난 뒤에야 자신의 엄지발가락이 엄지손가락으로 '둔갑해 버린'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회복하면 다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성검씨는 절망했다. 수술 후 넉 달이 지났지만 재건수술을 받은 엄지손가락은 물론, 엄지발가락을 자른 오른발의 통증 때문에 물건을 제대로 쥐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후유증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숟가락·젓가락질도 못해요. 세수나 목욕도 어렵고,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해요. 걸을 때 마다 발이 너무 아파요."

성검씨가 앞에 놓인 물컵을 오른손으로 쥐자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 레고인형의 'C'자 모양 손에 물컵을 억지로 끼워 놓은 것처럼 보였다. 엄지손가락 수술 부위를 슬쩍 건드리자 곧바로 통증을 호소했다. 그는 지난 9월 엄지 크기를 기존 손가락 둘레에 맞추는 성형수술을 받았는데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물건을 잡으면 (재건된) 손가락이 끊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손도 제대로 못쓰고, 걷는 것도 불편할 줄 알았다면 손가락이 없는 채로 그냥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컵만 주고 간 근로복지공단 … "노동부에 신고하겠다"는 회사

성검씨는 이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아무런 조력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7월 광주지역본부에서 담당자가 병원을 찾아오긴 했지만, 그 역시 성검과 말이 통하지 않자 물컵(텀블러)만 놓고 돌아갔다고 했다.



"간호사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사람이 온다고 얘기해 줬어요. 간호사 말 중에 '오늘', '산재', '사람'만 알아들어서 '누군가 오는구나'라고 짐작만 했어요. 어떤 사람이 오더니 나한테 '외국인이냐', '한국말 아느냐'고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니까 컵만 주고 그냥 돌아갔어요. 옆에 누워있던 한국사람들한테는 여러가지 묻고 갔는데…."

성검씨는 현재 광주민중의집의 도움을 받아 광산구 광주네팔인공동체쉼터에 머물고 있다. 지난 9월 추석명절 이후 사내 기숙사를 나왔다. 윤영대 광주민중의집 상임대표는 "성검씨가 사고 이후 계속 기숙사에 있으면서 물리치료나 재활치료를 제대로 못 받았다"며 "광주에 와서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 이 쪽으로 와서 쉬게 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재해 발생일인 4월28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를 산재요양기간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지난달 회사 관계자는 성검씨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복귀를 재촉하면서, 복귀하지 않을 경우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불법체류자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회사 "성검이 너 어딨어?"
성검 "나? 광주에 있어."
회사 "너 여기서 일 안 할 거야?"
성검 "나 산재 끝나면 일해."
회사 "너 오늘 중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노동부에다 신고할 거야. 그런 줄 알아. 우리는 신고만 하면 돼. 성검이 공장에 없으니까 잡아가라고 할 거야."

통화녹음을 들려주는 성검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회사는 불법체류자로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며 "불법체류자가 될까 봐 너무 걱정된다"고 말했다.

통역을 하던 우사씨는 "성검씨가 (나한테) 거의 매일 전화를 했다"며 "'불법체류자가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굉장히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회사의 압박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손가락 재건 수술 후 기숙사로 돌아 온 성검씨에게 회사는 '빨리 일을 해 돈을 갚으라'고 재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재 입은 이주노동자 심리상담·재활치료 시급

산재요양기간이 끝나가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성검씨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윤영대 상임대표는 성검씨와 함께 지난 1일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를 찾아 면담을 진행했다.

윤 상임대표는 "현재 성검씨에게 제일 필요한 건 재활치료와 심리상담"이라며 "사고로 인한 스트레스, 불법체류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돈을 벌러 왔는데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가족에게 사고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큰 상실감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을 공단측에 전달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했고, 공단은 이달 말까지 성검씨의 산재요양기간을 한 달 연장해줬다. 공단에는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없어, 그는 조만간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을 계획이다.

"치료가 잘 돼 계속 한국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상태로는 네팔로 돌아가도 아무 일도 못해요. 여기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돈을 벌고 싶어요."

23살 청년 성검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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