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선영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9. 29. 선고 2014고정4018 판결


1. 공소사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2013년 5월1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뒤 오후 6시22분께 다른 집회 참가자 약 1천500명과 함께 프라자호텔 앞 양방향 6개 전 차로를 점거한 채 집회·시위에 참가해서 구호를 외치는 방법으로 같은날 오후 5시부터 6시25분까지 1시간25분 정도 차량 통행을 방해함으로써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공모해 기타 방법으로 육로의 교통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2. 사건의 쟁점, 진행경과 및 판결

가.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 요건으로서 동일성·무결성(쟁점 1)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 중 그나마 의미 있는 것은 경찰 채증사진이 유일했고 나머지는 정보상황보고 등 경찰 내부 문서들을 모아 놓은 정도였다. 변호인은 대부분의 증거를 부동의했는데, 특히 거의 유일한 직접증거로 제출된 채증사진에 대해서는 디지털 증거이므로 원본 동일성과 무결성이 갖춰졌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 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변론했다.

나. 채증자라고 주장하는 경찰(A)의 증언
피고인측이 사진의 증거능력을 부동의했으므로 검사는 채증자(라고 주장하는 경찰)를 증인신청했다. 증거로 제출된 사진은 인도인지, 차도인지도 불분명했고 주변 건물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이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촬영된 것이었다. 증인은 보통 한 달에 10회 이상 집회에 나가 수십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사진 중 증거로 제출된 사진이 본인이 찍은 게 맞다는 것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진을 촬영하면 이니셜을 넣어 파일 이름을 조작해 놓기 때문에 자신이 찍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 사진은 기록상 이니셜이 없는데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대해서도 특별한 근거 없이 본인이 찍은게 맞다는 진술을 반복했다. 그러나 사건 당일의 날씨·촬영장소 등에 관련된 정보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다. 위·변조 의심사정에 대해 피고인측이 먼저 소명해야 하는가(쟁점 2)
한편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인정의 특수한 요건으로서의 동일성·무결성 주장에 대해 일반적으로 검사측은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되묻는 경우가 많다. 재판부도 위변조가 의심되는 사정에 대해 피고인측 소명을 먼저 듣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디지털 증거는 ‘0’과 ‘1’의 이진수 방식으로 존재하는 정보이므로, 출력된 사진 자체만으로는 변개 등 여부를 피고인측에서 소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아래 왼쪽 사진에서는 경찰 옆으로 하단 경계선 밖으로 사람들이 서 있는데 반해 오른쪽 사진에는 경찰 옆에 사람들이 거의 서 있지 않는데(왼쪽 변개본, 오른쪽 원본) 증거로 왼쪽 변개본만 제출됐다면 변개가 됐는지, 변개가 됐다면 어디가 변개됐는지 알아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측은 변개 등을 피고인측에서 소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므로 원본 존재 여부, 해시값 추출 여부 등을 검사측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출력된 사진의 파일을 확인해서 국과수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라. 사실조회 및 국과수 감정 결과
국과수로 보내기 위한 전제로 증거로 제출된 사진 파일에 대해 사실조회를 했는데,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원본파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채증자는 B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B는 앞서 본인이 채증한 사진이 맞다고 주장한 사람(A)이 아니었다. 사본파일에도 B의 이니셜이 붙어 있었다. 한편 국과수는 감정 결과를 통해 (사본) 사진파일에는 위변조했을 때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이 관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사진 파일의 촬영일시는 촬영기기의 설정값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실제 촬영일시와 동일한지 여부는 알 수 없음. 또한 모든 디지털 파일은 편집 프로그램에 의해 흔적 없이 편집이 가능함”이라고 회신했다. 즉 위변조 흔적이 없다 하더라도 촬영일시 등에 대해 다른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바. 카메라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경찰(B)의 증언(원촬영자 주장의 신빙성 인정 여부-쟁점 4)
사실조회 결과를 통해 채증자가 A가 아닌 다른 사람(B)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다시 B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B는 법정에서 자신이 촬영하던 사진기임은 인정하면서도 본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서 A에게 맡겼다고 A로부터 들었는데, 사실 잘 기억나지 않고 사진기를 맡기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사. 판결
법원은 디지털 증거가 편집 등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한 사본이라는 점에 대해 파일의 생성과 전달 및 보관 등의 절차에 관여한 사람의 증언이나 진술, 원본이나 사본 파일 생성 직후의 해시(Hash)값과의 비교, 파일에 대한 검증, 감정 결과 등 제반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고, 소송상 사실에 관한 것이므로 자유로운 증명으로 족하다고 전제한 후, 이 사건의 경우 원촬영자도 불분명하고, 국과수 감정결과회보서에 의할 때에도 디지털 파일은 편집프로그램에 의해 흔적 없이 편집 가능하다는 의견인 점 등을 볼 때 사진파일 촬영일시 정보와 실제 촬영일시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는 등 채증파일이나 출력한 채증사진 모두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3. 대상판결의 의미

기존 판례는 현장사진에 대해 ‘촬영일자’ 부분은 전문증거에 해당해 전문법칙이 적용되지만 사진 전체에 대해서는 비진술증거로 전문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대법원 1997. 9. 30 선고 97도1230). 그러므로 촬영자의 진술과 무관하게 제출된 사진이 현장의 정확한 영상이라는 사실만 증명되면 증거능력이 인정됐다. 그런데 필름사진의 경우 렌즈로 투과한 영상을 필름에 기록하는 ‘흔적’으로서의 성질을 갖고 있지만 디지털 사진은 기본적으로 원본 자체는 ‘0’과 ‘1’이라는 이진법 정보이고 생성 및 전달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적 변형과 조작이 가능하므로 동일성과 무결성, 원촬영자의 촬영확인은 아날로그 사진 시대와 달리 판단해야 한다.

집회에서 채증과 사찰의 거리는 멀지 않다. 집회에서의 도로점거행위를 일반교통방해로 의율하는 것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적어도 억울하게 일반교통방해죄로 처벌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채증 자체가 위법하게 된 것은 아닌지, 제출된 채증증거가 증거능력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엄격히 심사돼야 한다. 그런데 실무적으로는 피고인측이 사진증거에 대해 부동의하는 경우 채증자라고 주장하는 자가 증언을 통해 “내가 찍은 사진이 맞다”라고 하면 쉽게 증거능력이 인정돼 왔다. 그러나 집회 현장에서 수십에서 수백장의 사진을 찍는 채증경찰관이 증거로 제출된 몇 장의 사진을 특정해서 “내가 찍은 것이 맞다”라고 진술한 것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 사건에서 이런 진술만으로 쉽게 원채증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실한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확인됨 셈이다. 특히 집회에서의 채증은 어떤 상황에서 촬영됐는가, 촬영장소·시간은 언제였는가는 위법수집증거의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원채증자 확인의 문제는 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다행히 대상판결에서는 경찰 스스로의 사실조회 회신에 의해 원촬영자라고 주장하는 경찰의 증언이 신빙성 없음이 드러났다. 국과수 감정회보를 통해서는 디지털 증거는 흔적 없이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됐다. 앞으로 집회 채증자료들의 증거능력 인정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본 판결의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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