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겸·한정애 의원과 토론회 공동개최

은행원이나 간호사처럼 정규직이면서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이 감정노동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고객평가가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고,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는지 감시당한다고 답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지난 28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강당에서 열린 ‘감정노동 실태조사 분석 결과 발표 및 감정노동자 보호입법 추진 토론회’에서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고객도 ‘과도한 친절로 불편하다’고 한다”며 “하루빨리 감정노동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감정노동을 노동관계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김부겸·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소비자 92% '과도한 친절' 불편 경험

한인임 사무처장은 올해 7월 한 달간 금융노조·서비스연맹·보건의료노조·의료산업노련·우정노조 조합원 2천737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47.7%의 노동자가 위험 수준의 ‘감정부조화 및 손상’ 상태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정부조화 및 손상'은 "고객을 대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조직의 감시 및 모니터링’에서도 47.5%의 노동자들이 위험집단으로 분류됐다. 이들은 △회사 요구대로 고객을 응대하는지 감시당하고 △고객평가가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며 △고객응대로 인한 문제로 직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 처장은 “가장 큰 문제는 ‘조직의 지지 및 보호체계’에 관한 답변으로, 53%가 위험집단으로 확인됐다”며 “감정노동으로 상처를 입고 감시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입법 추진”

문제는 이 같은 감정노동이 노동자뿐만 아니라 고객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감정노동을 생각하는 기업 및 소비문화조성 전국협의회’가 올해 8월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감정노동에 대한 소비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전국 소비자의 60.3%가 “백화점·관공서·기업의 콜센터를 이용하면서 불편할 정도의 과도한 친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한 처장은 해당 조사를 인용하면서 “92%의 소비자가 적어도 한 번 이상 과도한 친절로 불쾌감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45.7%가 감정노동을 “매우 잘 안다”고 밝혔고, 46.5%는 “약간 안다”고 답했다. 소비자의 97.5%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업무량과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소비자 95%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에 대해선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는 “소비자들도 감정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왜 힘들어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부처에서 참석한 토론자들은 감정노동과 관련한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수연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인권팀장은 “근로기준법에 감정노동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 감정노동 가치가 공식화되지 않고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 개념을 정의하고 사용자가 보호방안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금융산업에 감정노동 보호입법이 이뤄진 것을 감안해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감정노동을 보호하는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규정을 넣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1천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근로자 보호사업을 신규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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