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마트에서 계산업무를 하는 계산원의 모습
 

11년 동안 이마트 부산 해운대점에서 일한 봉아무개씨는 올해 6월 우측회전근개 파열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우측회전근개 파열은 같은 자세로 반복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앓는 근골격계질환 중 하나다.

봉씨는 11년 동안 계산원으로 일하다 올해 2월 농산파트에 배치됐다. 1평 남짓한 공간인 계산대에 서서 하루 8시간씩 계산업무를 했다. 162센티미터인 그의 키보다 작은 계산대에 구부정하게 서서 고객 신용카드를 결제했고, 제품 일련번호를 입력했다. 농산파트에 배치된 뒤에는 과일 박스를 내려 진열했다. 하루에 30~60통의 수박을 잘랐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동부지사는 최근 "봉씨의 질환은 업무연관성이 없다"며 산재를 불승인했다. 봉씨는 “계산원으로 일할 때부터 오른쪽 어깨와 손이 아팠지만 팔을 사용하는 일을 하니 당연히 아플 거라 생각하고 참았다”며 “회사가 근골격계질환 예방에 관심을 갖고 이 같은 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은 여성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진입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법정 최저시급보다 조금 높은 시급을 받는다. 대형마트가 산재 사고에서 안전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매일노동뉴스>가 취재한 결과 △상품 진열 △상품 정리 △계산 △조리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었다. 단순반복 업무 탓에 근골격계질환에도 취약했다.

"점장님, 안전화 신어야 합니다"

서울지역 이마트 농산파트에서 일하는 김애경(가명)씨는 최근 팰릿(pallet)을 옮기다가 떨어뜨려 발등을 다쳤다. 대형마트는 매장에 들어갈 상품을 팰릿에 켜켜이 실어 운반한다. 상품이 실린 팰릿의 높이는 170센티미터. 상품이 실린 팰릿의 무게는 1톤이 넘는다. 대형마트 직원들은 잭(jack)을 이용해 팰릿을 운반한다.

김씨는 빈 팰릿을 들다가 그만 발등을 찧었다. 김씨는 “다른 직원들도 번쩍번쩍 드니까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만 사고를 당했다”며 “주부들이 들기엔 무거운데 바쁘게 알하다 보니 여러 명이서 들지 않고 혼자 들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는 팰릿으로 인한 사고가 잦다. 이마트노조(위원장 전수찬)에 따르면 잭을 운전하다 바퀴가 발등을 타고 올라가는 사고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매장이 혼잡한 시간에도 잭을 운전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잭과 팰릿의 무게로 인해 크게 다친다. 전 위원장은 “무게 때문에 사람이 나타나면 급정거를 해서 잭을 멈출 수가 없다”며 “관성의 법칙으로 바퀴가 직원의 발등 위를 타고 올라가는 바람에 안전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으면 발가락이 으스러진다”고 설명했다.

마트 직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여성노동자들도 팰릿에 상품이 실린 잭을 운전한다. 무거운 상품이 실린 잭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다른 직원들과 부딪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홈플러스에서 근무하는 이보람(가명)씨는 “잭을 처음 운전했을 때 너무 크고 무서워서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급하니까 되더라”며 “상품을 머리보다 높이 쌓은 다음 끌고 가는데 안전하게 일하려면 잭을 운전하지 말아야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사다리 오를 때 2인1조 원칙 정해 주세요"

대형마트 직원들은 상품을 진열할 때 사다리를 이용한다. 대형마트 농산·청과코너 진열대는 경사형집기와 벽면쇼케이스로 나뉜다. 경사형집기의 높이는 80~120센티미터, 벽면쇼케이스는 160센티미터 이상이다. 벽면쇼케이스의 아랫 부분에는 회전율이 높은 상품을 주로 진열하고, 상단에는 판매량이 높지 않은 상품을 넣는다. 상단에는 재고상품도 적재한다. 남자 직원들이 까치발을 해야 최상단에 손이 닿을 정도로 높다. 여성 직원들은 사다리를 이용해 상품을 진열한다. 이마트는 최상단 진열은 1일 1회 정도 한다고 밝혔지만 진열을 담당하는 사원들의 설명은 다르다. 팔린 상품 자리에 새로운 상품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사다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매장이 혼잡한 시간에도 사다리에 오른다.

이마트 진열사원인 김씨는 “사다리에 올랐는데 손님이 사다리를 툭 쳐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 줄 알았다”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사다리 근처로 누가 오는지도 모르지만 바쁘다 보니 감수하고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홈플러스 직원인 이보람씨는 “너무 바쁠 때에는 사다리를 안 쓰고 대형마트 진열대(곤도라)를 밟고 올라가 진열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규정에 맞는 환풍기·깔판 설치해 주세요"

성효순(가명)씨는 홈플러스 A점포에서 14년간 닭을 튀겼다. 하루 8시간 닭을 튀기고, 오리를 굽는 게 그의 업무다. 성씨가 조리한 포장치킨과 훈제오리는 고객 식탁에 오른다. 섭씨 165도의 튀김기 앞에 서 있는 것보다 괴로운 건 튀김연기다. 환기구가 설치돼 있지만 조리실 연기를 빼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성씨는 “8시간 동안 닭을 튀기고 집에 가면 목이 불편하다”며 “환풍기가 설치돼 있지만 튀김연기가 나한테 다 온다”고 말했다.

조리실은 기름때로 인해 미끄럽다. 조리실 바닥에 기름이 튀기 때문에 항상 기름때가 끼여 있다. 직원들은 조리실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 성씨는 “힘을 주고 걸으니까 다리가 붓고 아프다”며 “환기시설을 제대로 설치해 주고 안전화를 달라고 점장님께 건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형마트 계산원들은 계산대에 고무매트를 설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점포를 제외하면 매트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마트 계산원 정미경(가명)씨는 “우리 점포는 고무매트가 설치돼 있지만 두께가 얇아서 제 역할을 못한다”며 “대형마트 계산대에 의무적으로 일정 두께 이상의 고무매트를 설치하도록 규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대형마트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지정 시급

서비스연맹은 대형마트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올해 3월부터 최근까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양성교육을 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유통업 서비스 판매 종사자 건강권 조사 결과 44.7%의 직원이 의사 진료가 필요한 수준의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26.4%는 고도 우울증 증상을 앓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맹은 현장에서 일하는 대형마트 직원이 사고 예방부터 산재 신청까지 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과 관련한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이수자를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위촉해 산재예방활동을 이어 갈 계획이다. 안전보건공단 지원을 받아 진행한 이번 사업에는 서울을 비롯한 8개 지역에서 근무하는 대형마트 조합원 110명이 참여했다.

지난 25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교육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대형마트가 안전사고 예방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예컨대 잭과 팰릿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화를 지급하고, 사다리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에서 2인1조 작업을 원칙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대형마트의 산업안전 예방 수준은 한마디로 개판"이라고 비판했다. 한 처장은 "여성이 남성들 이상으로 힘쓰는 일을 하고 있어 그만큼 골병이 든다"며 "대형마트는 이 같은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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