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찬바람이 불며 기온이 섭씨 9도로 뚝 떨어진 24일 오전 10시께. 분홍색 티셔츠를 외투 안에 받쳐 입은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옷깃을 여민 채 서울시 종로구 서울파이낸스빌딩 앞 계단에 앉았다. 이들은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20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지부장 김성우) 조합원들이다.

지난 5일 파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단체로 맞춘 분홍색 티셔츠만 입고 있던 노동자들은 어느새 외투를 입고 무릎 담요까지 덮고 있었다. 근무시간 동안 계단에 앉아 대기하는 일에는 임산부도 예외가 아니다. 임신 9개월째인 박아무개 조합원을 비롯해 5명의 임신 조합원이 파업에 함께하고 있다.

5년차라고 밝힌 박씨는 “비록 만삭의 몸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 사는 환자를 돌보면서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이 있었다”며 “전문요원으로 일할 때 보람을 느끼지만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돼 고용이 불안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아무개 조합원은 “서울시와 구청이 성실하게 교섭해 고용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도 파업에 동참했다. 최아무개 조합원은 “결혼 직전까지 파업이 이어질지 몰랐다”며 “신혼여행 다녀오면 지부가 승리해 파업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부 관계자는 “전 조합원을 데리고 결혼식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조합원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파업은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시는 구청장협의회를 열어 지부 파업 문제를 논의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김성우 지부장은 “시와 자치구 모두 고용안정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다”며 “지부가 요구한 고용안정 방안을 24일까지 거절할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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