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노동뉴스

"집회를 방해하려는 의사도 전혀 없었다."

"시각장애인공연단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 고대의료원지부와 충돌이 예상돼 방화셔터를 내렸다."

지난 13일 노조의 사내 집회를 방해했다는 논란을 산 고려대의료원의 해명이다. 그런데 24일 이런 해명과 반대로 사전에 집회를 막기 위한 계획을 짜고 조직적으로 이를 시행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이 발견됐다.

<매일노동뉴스>가 24일 입수한‘노동조합 조정신청 결의대회 대책(안)’<사진>이 그것이다. 병원은 지부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함을 들고 이동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따로 수집해 CD에 복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부는 13일 오후 5시30분부터 병동 로비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명회 형식의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병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고수하면서 단체교섭이 파행됐고, 쟁의조정을 신청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한 집회였다.

고대의료원 “노조 집회 원천봉쇄”

문건에 따르면 병원은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애초부터 노조 집회를 원천 봉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문건에는 “26일과 27일 실제 파업 등을 고려해 (13일 집회를) 원천봉쇄 예정”이라며 “환자 체험의 날 행사에 따라 부스·전시물·장비 등을 13일 오후 12시부터 설치 예정(로비 선점)”이라고 적혀 있다. 병원이 방화셔터를 내린 이유로 설명한 시각장애인공연단 공연도 집회에 대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병원은 문건에 나온 대로 집회 장소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공개강좌를 열고 7시부터 시각장애인공연단의 음악회를 열었다.

실제 집회는 원천봉쇄됐다. 집회 시작 시각에 맞춰 병원은 방화셔터를 내렸다. 이 역시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병원은 같은 문건에 시간별 '행동 요령'을 명시했다. 오후 4시30분 '동원 인력 로비 집결', 5시30분 '원무팀 입퇴원쪽 셔터, 약제팀 앞 셔터, 스타벅스 앞 셔터 내림. 로비 에스컬레이터 입구 바리케이드 설치', 5시30분 '로비 출입 완전 통제' 같은 구체적인 행위가 적시됐다. 이날 동원된 인력은 120명으로 부서별로 차출했다는 문건도 나왔다. 20명 규모의 채증조도 운영했다.

병원은 “마찰이 예상돼 노사협력팀과 협조해 집회 물품을 회수하고 병원 밖으로 이동하라”며 “집합된 인원은 총무팀장 및 조장 지시에 따라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 고려대의료원이 조직적으로 투입한 직원들이 노조의 집회를 방해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병원, 쟁의행위 찬반투표 장면 CCTV 이용해 수집

병원이 18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지부의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사찰한 정황도 공개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CCTV 촬영화면에는 지부가 투표함을 운반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지부는 교대제 근무로 인해 조합원들이 투표를 하기 여의치 않은 점을 고려해 투표함을 들고 다니며 투표용지를 받았다. 병원은 엘리베이터 CCTV를 통해 지부의 활동을 감시했다. 지부가 투표함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 영상을 수집해 CD에 복사했다.

지부에 따르면 병원은 근무시간에 투표를 하지 말도록 지침을 내렸다. 지부가 지침을 어기는지 확인하기 위해 증거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료원 노사협력팀은 해당 영상을 복사해 보관해 달라고 요청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는 개인정보 주체가 동의하지 않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법 위반 소지가 큰 것이다.

박소희 노조 법규부장은 “정당한 조합활동에 대해 방화셔터를 내리고 직원을 동원해 방해한 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를 기획한 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고대의료원이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방식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병원의 명성은 사상누각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고대의료원은 "문건에 대해 자체 조사 중"이라며 "현재까지 확인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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