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촬영한 집회 채증사진의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판단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촬영자가 불분명한 채증사진의 증거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경찰 채증장비와 관련한 내년 예산을 삭감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24일 법조·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판사 노서영)은 민주노총 집회에 참가했다가 도로를 점거한 혐의를 받아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된 김아무개(43)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사회활동가인 김씨는 2013년 5월1일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에서 주최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뒤 프라자호텔 앞 6개 차로를 점거해 차량통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 되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제출한 채증사진 파일에 대해 “원촬영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고 최소한의 신뢰성 확보장치도 미흡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를 그대로 출력한 채증사진의 증거능력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 변호인측은 채증사진의 원본 존재 여부 확인을 경찰에 요청했는데 원본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 A씨가 촬영 당사자라고 법정에서 증언했지만, 집회 당일 카메라를 사용한 경찰은 B씨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원본이 없고 촬영당사자가 불분명한 사진을 증거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더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진파일에 나온 촬영일시와 실제 촬영일시가 동일한지 알 수 없고, 디지털 파일은 흔적 없이 편집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사진파일의 편집·조작을 막기 위해 경찰이 해시값(축약 암호) 추출이나 봉인을 하지 않은 점도 채증사진이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됐다.

경찰의 채증사진 자체에 제동을 건 판결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채증사진 제출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씨를 대리한 서선영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그동안 나온 일반교통방해죄 사건을 보면 경찰이 ‘내가 찍은 사진이 맞다’라고 증언하면 손쉽게 증거능력을 인정받았다”며 “경찰이 법정에 제출하는 채증사진이 얼마나 부실한지 드러났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내년 노후 채증장비 교체를 위해 15억900만원의 예산안을 제출했다. 올해보다 3.9% 늘어난 액수다. 더불어민주당은 예산삭감을 추진 중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예산소위에 참여하고 있는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채증장비 사용은 최소화해야 한다”며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불법시위가 감소하고 있는 만큼 채증장비를 교체해 같은 수준으로 보유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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