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이 지난 19일 열흘 만에 끝났다. 끝 모를 바닥을 향한 경쟁을 막겠다는 파업 목표는 미완에 그쳤다. 화물연대는 국토교통부가 지난 8월 발표한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발전방안이 경쟁을 더 부추길 게 뻔하기 때문이다. 파업은 끝났지만 해결과제는 남았다. 화물운송시장은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된 화물차 수급제 폐지 방안

윤영삼 부경대 교수(경영학부)

▲ 윤영삼 부경대 교수(경영학부)

화물운송업은 제조업의 부대사업 성격이 강한데, 최근 경기침체로 제조업이 부진에 빠지자 정부는 제조업 물류비 절감 차원에서 화물차량 수급제한 완화 방안을 저울질해 왔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서비스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영업용 화물차에 대한 허가제 규제완화 방침을 밝혔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간담회 바로 다음날 김포물류단지를 방문해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기본안을 마련했다. 물류서비스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걷어 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제조업 물류량이 줄어드는 것과 별개로 택배물량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로서는 규제 완화를 추진할 좋은 핑계가 됐다. 대통령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했던 국토부는 택배차량 부족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지난 8월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내놓았다. 1.5톤 미만 소형화물차와 개인업종(차량 한 대 소유자) 택배용 화물차에 대한 수급조절제를 폐지하는 내용이다. 화물차 수급조절제는 2003년 화물연대의 두 차례 파업 이후 12년간 유지돼 온 제도다. 화물운송 차량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운임단가 인하 등 부작용이 발생하자, 정부가 화물차량 증차와 신규허가를 조절한 것이다. 문제는 수급조절제 폐지가 소형차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택배차량은 늘리더라도 전체 공급량은 동결을 유지한다”는 식의 단서조항이 없는 한, 총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기조가 노골적인 기업 편들기에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피해는 화물노동자에게 돌아간다. 노무현 정부 때 시도된 표준운임제 도입 논의는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자취를 감췄다. 박근혜 정부 역시 대기업과 번호판 장사로 먹고사는 지입회사들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다. 정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저성장 국면에서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적 요구가 사회적 울림으로 퍼지기 힘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ARS 투표라도 해서 화물노동자 입장 반영하라

이광재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수석부본부장

▲ 이광재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수석부본부장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물류 대기업과 화주단체들의 입장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늘 화물노동자의 입장은 배제된다. 국토교통부는 지입차주 권리보호 방안을 세운다고 밝혔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된 6년 이후에는 지입차주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운송사업자가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귀책사유는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정한다고 한다. 여기서 관련 단체에 화물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화물노동자가 백날 싸우면 뭐하겠는가. 표준운임제 도입도 정부는 결국 관련 단체들의 반대 때문에 못하겠다고 나왔다. 우리는 갈수록 힘이 빠진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화물노동자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업체들이 갖고 있는 전화번호를 이용한 ARS 투표도 가능할 것이고 우편을 이용한 방법도 있다. 지난 대선기간에 박근혜 대통령은 화물노동자들에게 문자를 살포했다. 본인이 당선되면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을 전일·전차종에 적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은 공약이다. 정부도 화물노동자의 연락처를 다 갖고 있을 테니 투표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가뜩이나 물량도 줄었는데, 현장 전쟁터 될 것

김영수 화물연대본부 컨테이너위수탁지부장

▲ 김영수 화물연대본부 컨테이너위수탁지부장

가장 두려운 것은 수급조절제가 무력화돼 화물차가 계속 유입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 적용도 안 되고 퇴직금도 안 나온다. 정말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2년쯤 전부터 물량이 확연하게 줄기 시작했다. 하루 6회 정도 운행하던 단거리 차량이 4회로 줄고 한 주에 12회 정도 운행하던 장거리 차량은 8~9회로 줄었다. 수입은 30%가량 하락했다.

정부 계획대로 톤수를 늘리는 증톤이 쉬워진다면 현장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 겨우 최저생계비 정도를 벌고 있는데 증톤이 쉬워지면 화물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지입료도 받고 영업용번호판도 팔아먹는 운송회사만 좋아지는 대책이다. 공급이 계속 늘어나면 '슈퍼갑'인 화주는 운송료를 계속 다운시킬 것이다. 일단 운송료부터 현실화한 뒤에 증차든 증톤이든 그때 가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화물노동자 최저운임 보장 필요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화물노동자들은 운임이 낮다고 하소연한다. 운임은 오랜 시간 정체하거나 하락했다. 그런데 지입차주들인 화물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는 기름값이나 보험료 같은 차량 운영비는 끊임없이 올랐다. 지입차주들인 화물노동자는 운행을 하지 않아도 화물차 할부금을 내야 한다. 예컨대 2억원짜리 트럭을 할부로 사면 6년 분할납입해도 매월 200만~300만원이 든다. 다단계 하청으로 중간착취도 심각하다. 화주가 지불한 운송비는 재벌운송사와 중간알선업체를 거치면서 63%만 화물노동자에게 지급된다. 비용을 줄이려는 화주는 운송비를 낮추고 싶어 하고 운송사들은 과적을 강요한다. 노동자는 계약을 해지당할까 봐 재벌운송사들의 요구에 반대하기 어렵다.

화물노동자들은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수입을 올리려면 더 오래,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더 빨리 운행해야 새 일감을 하나라도 더 받기 때문에 과속은 일상화된다. 자영업자 신분으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거나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수급조절을 해도 회전율이 높아지니 화물차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가 난다. 여기다 정부 계획대로 수급조절제까지 폐지되면 그렇지 않아도 아래를 향한 출혈 경쟁을 하는 화물노동자들 처우는 심각하게 나빠진다. 호주처럼 최저운임을 규제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호주는 2012년 도로안전운임법을 제정해 화주들이 책임져야 할 공정운임과 지급 방식, 대기시간에 대한 보수를 비롯한 노동기준을 정하도록 했다. 특히 책임의 사슬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 도로운송 공급사슬에 관여하는 대기업 화주, 대형 물류회사나 주선업체, 도로운송회사에 화물노동자의 안전운행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화주나 대기업 물류회사가 노동과정을 통제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우고 처벌하면 시장이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표준운임제 도입·지입제 폐지 제도개선 나서라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

▲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팀장

정부는 화물차 운행안전 확보를 위해 과적 단속을 강화하고 지입차주 권리보호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관련 법률을 연내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화물노동자의 노동권과 안전을 위한 이번 투쟁의 성과가 작지 않다.

화물노동자의 요구는 노동의 문제임과 동시에 화물운송업계의 왜곡된 구조가 야기하고 있는 과적·과속, 장시간 운전 등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다수의 사고를 제도적으로 예방하고 이를 통해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

정부는 표준운임제 도입, 지입제 폐지 등에 대해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제도개선 요구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화물노동자의 장시간·저임금 노동구조의 해소가 시급하다는 화물노동자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지입차주’라는 이름으로 턱없이 낮은 운송료와 과도하게 책정된 수수료를 감내해야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장시간 운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개선의 정당함과 필요성은 이미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됐다.

정부는 2008년의 합의와 화물운송시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가 약속한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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