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부터 40여년간 탄광이나 채석산에서 일하다 2007년 일을 그만둔 강아무개(67)씨. 강씨는 종잇장처럼 하얘지는 증상 때문에 일명 '백지증'이라 불리는 레이노증후군(진동신경염) 환자다. 레이노증후군은 장기간 충격이나 진동강도가 높은 작업을 할 경우 손발이 저리고 통증을 느끼는 질환이다.

착암기로 채석·채탄작업을 주로 했던 강씨는 “20여년 전부터 손발 저림이나 통증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통을 참아 가며 일했던 그는 진폐증에 걸리면서 일을 그만뒀다. 지난해에는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레이노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강씨는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단은 강씨가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된 데다, 검사 결과 레이노증후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대학병원 의사가 레이노증후군이라고 했는데 공단에서는 왜 아니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똑같은 검사, 결과는 반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12년 발표한 ‘진동작업 종사 근로자의 진동노출실태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그라인더·착암기의 진동노출량은 유럽 노출기준의 최대 두 배 이상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레이노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단이 레이노증후군 산재 심사 과정에서 객관성이 떨어지는 지침을 사용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6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11월 ‘레이노증후군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었다. 지침은 레이노증후군 발병 여부를 판단할 때 냉각부하 검사를 반드시 하도록 했다. 섭씨 10도의 냉수에 5분 정도 양손이나 양발을 담궜다가 꺼내는 방식이다. 이때 피부색이 창백하면서 적색을 띠면 레이노증후군으로 판단한다.

레이노증후군을 진단할 때 공단이 필수적으로 실시하도록 한 냉각부하 검사 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검사는 많다. 핵의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레이노스캔 검사나 손톱 압박 검사도 있다.

공단은 “레이노 현상의 주요 특징인 피부색조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냉각부하 검사를 필수로 하고 있고, 필요할 경우 선택적으로 레이노스캔 검사 등을 활용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냉각부하 검사가 가장 정확하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의학 관련 기관들은 레이노스캔 검사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대한핵의학회는 “레이노증후군을 판단할 때 레이노스캔 검사가 가장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레이노증후군에 걸려 산재신청을 한 강씨의 경우 대학병원 진찰에서도, 공단의 특별진찰에서도 냉각부하 검사를 받았다. 같은 검사를 했는데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만큼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용득 의원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냉각부하 검사를 통해 산재를 인정받은 탄광노동자를 상대로 냉각부하 검사를 다시 했는데 육안으로는 색조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검사 방식 썼더니 산재승인율 34%→100%

주목되는 것은 공단이 냉각부하 검사만을 통해 진찰을 하면서 산재승인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의원이 공단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6월 공단은 레이노증후군 산재신청과 관련해 23건을 특별진찰했다. 냉각부하 검사만으로 진찰한 경우가 19건으로 가장 많았다. 냉각부하 검사와 레이노스캔 검사를 함께 한 것이 3건, 냉각부하 검사와 손톱압박 검사를 동시에 한 것이 1건이었다.

그랬더니 냉각부하 검사만 실시한 산재신청건은 승인율이 34.8%에 그쳤다. 반면 레이노스캔 검사를 병행한 경우 66.7%의 승인율을 보였고, 손톱압박 검사를 함께 한 사건은 100% 승인됐다.

이 의원은 “공단이 다양한 검사로 최대한 산재를 인정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객관적이지 않은 냉각부하 검사를 필수적으로 받게 하면서 불승인이 남발되고 있다”며 “보다 객관적인 방식으로 특별진찰이 이뤄지도록 지침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이 의원측에 보낸 답변서에서 “직업환경의학과·류마티스내과·핵의학과 전문의들이 함께 논의해 냉각부하 검사를 필수검사로 선택했다”며 “필요하다면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업무상질병 인정기준 의학 자문위원회 논의를 거쳐 지침 변경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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