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 방송사 보도로 자동차 워셔액 유해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 회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고 있던 터였다. 그 와중에 자동차 워셔액까지 주목받으니 의아스러웠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동차 워셔액의 주성분은 메틸알코올(메탄올)이다. 무방비 상태로 소량만 흡입해도 신경장애 또는 실명을 초래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자동차 앞 유리에 뿌려지는 워셔액은 공기 흡입구를 통해 차량에 스며든다고 한다. 국민들 입장에선 메탄올을 흡입하면서 운전한다고 하니 얼마나 경악했겠는가.

더구나 미국·독일은 메탄올 성분의 워셔액을 규제하고 있다. 때문에 수출용 차량에는 무해한 에탄올 성분의 워셔액을 장착한다. 대신 내수용 차량에는 여전히 메탄올 워셔액이 쓰인다. 메탄올 워셔액 가격은 에탄올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탓이다. 애꿎게도 우리나라 국민들만 완성차 회사 저가부품 정책의 ‘봉’이 된 것이다.

뜨거웠던 여름만큼 달군 자동차 워셔액 유해성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시중에서는 에탄올 워셔액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까지 유행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하지 않으니 국민들 스스로 자구책을 찾은 것이다. 현재까지 메탄올 워셔액을 에탄올로 변경한 완성차는 한 곳도 없다. 완성차 회사는 극소량만 공기흡입구로 유입되니 유해하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다.

사실 메탄올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메탄올은 산업현장에서 광택제로 쓰인다. 휴대폰 부품을 세척하거나 깎는데 쓰인다. 주로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에서 메탄올을 이용한 작업이 이뤄진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메탄올 사용 사업장은 공기순환기기 설치는 물론 노동자에게 보안경과 안전장비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영세사업장은 이러한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보호장비는 부실하기 짝이 없고, 사업장에 환풍기조차 없는 곳도 있다. 때문에 지난 2월 인천·부천지역 삼성전자 3차 협력업체에서 일한 노동자 5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같은 업체에서 일한 노동자 2명이 추가로 실명했다는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이쯤 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만큼은 아니더라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법도 하다. 적어도 자동차 워셔액 유해성 논란 정도로 떠들썩해지는 것이 맞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들은 8개월 만에 추가 피해자가 나온 사건임에도 침묵했다. 그것도 메탄올로 인한 ‘집단발병’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사실만 떠오른다. 피해자 모두 영세업체에서 일한 불법파견 노동자라는 점이다. 불법파견 노동자는 고용기록도 없으며, 산재보험 등 사대보험 가입조차 못하는 처지다. 파견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사용사업주도, 파견사업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되레 사용사업주는 책임을 떠넘기고, 파견사업주는 산업재해를 은폐하기 일쑤다. 일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도 파견노동자는 결코 주목받지 못하는 개탄스런 현실이 벌어진다. 그러니 파견노동자가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해도 반향이 미미했던 것이다.

이번 메탄올 산재사건은 피해자를 치료한 담당 병원이 노동부에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후 노동부는 피해자가 나온 3곳의 업체에서 일한 266명을 추적 조사했지만 추가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8개월 만에 피해자 스스로 산업재해 사실을 알렸다. 이런 정황을 미루어보면 파견노동자 사용업체가 추가 피해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짐작된다. 해당업체가 노동부에 거짓보고를 한 것이다. 결국 사용업체는 노동부 조사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안전보건 감독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부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노동부의 행정력으로는 피해자조차 찾지 못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나.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사업장 안전보건 관리는 더이상 방치돼선 안 된다. 노동부는 피해자가 발생한 3곳의 업체를 거쳐 간 파견노동자 전수조사뿐만 아니라 메탄올 사용업체 전체로 조사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메탄올과 같은 급성 독성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감시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