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사장재벌책임공동행동 회원들이 12일 서울 을지로 SKT타워 앞에서 지난달 27일 전신주 작업을 하다 추락해 사망한 SK브로드밴드 인터넷 설치기사의 죽음을 추모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5일 2003년 태풍 '매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강했다는 '차바'가 덮친 울산. SK브로드밴드 설치기사 김태주(가명)씨가 울산홈고객센터 직원들이 보는 카카오톡 단체창에 다급하게 메시지를 올렸다.

“센터가 물난리 났으면 현장은 어떻겠습니까. (작업중지에 대한) 빠른 상황 판단을 바랍니다.”

태풍이 몰고온 폭우로 울산 곳곳이 침수되면서 작업을 중지해 달라는 요청을 급하게 한 것이다. 오전 10시48분 한 설치기사는 “10시에 장애 수리하러 갔다가 죽을 뻔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른 기사는 “○○아파트 106동이 입구쪽이라 지하로 물이 유입 중”이라고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아침부터 쏟아진 폭우로 도로가 침수돼 이동할 수 없다는 설치기사들의 보고가 줄이었지만 센터 관계자가 작업을 중지하라고 지침을 내린 건 업무가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께였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에 따르면 이날 울산지역에서 설치기사의 차량 수대가 침수됐다. 작업을 중지하지 않았으면 폭우로 인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작업중지를 요구했다. 한 조합원이 “단체협약에 의거해 작업중지 요청을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센터는 이 노동자의 말에 “기사님 법으로 너무 그러지 맙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날 대화는 12일 오전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카카오톡 대화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얼마나 안전문제에 취약한 처지에 놓였는지를 방증한다. 실제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소속 김아무개씨가 궂은 날씨에 전신주에서 작업을 하던 중 감전돼 추락해 숨졌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달 7일까지 15명의 설치기사가 고공작업 중 추락해 숨졌다. '차바'로 인한 침수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가 보인 안전불감증은 이런 사태의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SK브로드밴드에 협력업체 실적 압박 중단을 요구했다. 기사들의 성과급 중심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들은 실적 압박을 받은 협력업체가 기사들에게 이를 전가하고, 기사들은 성과급을 받으려고 위험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SK브로드밴드에 △하도급구조 폐지 △협력업체에 고소작업차 지급 △원청업체 주도로 안전관리 교육 진행을 요구했다. 지부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겠다”며 “더 이상 위험에 내몰리는 노동자가 없도록 원청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라”고 강조했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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