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정신질환자를 관리하고, 치료하는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진국 수준으로 정신질환을 관리하려면 지금보다 최소 10배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예산지원만큼 지원인력의 고용안정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김소윤 연세대 의대 교수는 11일 박마루 새누리당 서울시의원과 권미경·박운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우리나라는 보건예산 중 정신보건예산 비율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아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는 이날 오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지역건강증진센터의 공공성 강화 과제'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로 7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건강증진센터 노동자(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 문제도 논의됐다. 현재 300여명의 지부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열악한 국내 정신보건사업

김소윤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1950년대 후반부터 정신질환자의 탈시설화 정책에 따라 지역 정신보건센터가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관리해 왔다.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과 장기입원을 억제하고,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주립정신병원 입원환자수는 55년 56만명에서 80년 14만명으로 줄었다. 영국은 정신병원 병상수가 55년 15만개에서 99년 3만6천개로 감소했다. 그는 "정신질환자를 지역사회에서 보호하겠다며 과감하게 탈(병)원 정책을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당수 정신질환자가 병원을 떠나 시설 또는 지역사회에 거주했다. 이들 환자는 지역 정신보건센터에서 관리했다. 미국은 인구 1천500명당 1명의 정신보건 관련 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영문 전 국립공주병원장은 “200만명가량이 거주하는 휴스턴의 경우 1천400명의 인력이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며 “정신과 전문의 25명이 정확히 100명만 사례관리를 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1천만명 서울시민 300명이 관리

우리나라 상황은 열악하다. 올해 6월 기준 서울시민 990만명의 정신건강을 300여명의 정신보건전문요원이 맡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신보건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고, 지자체가 위탁을 준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산과 인력 부족은 현장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규정상 2인1조로 정신질환자를 방문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혼자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그 사례다. 정신질환자로부터 성희롱이나 협박을 당하는 위험한 상황도 생긴다.

김성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은 “상담자가 물건을 던져 얼굴이 찢어지거나 환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지 모르고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을 전문요원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소윤 교수는 “보건예산 중 정신보건예산은 0.59% 가량인데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를 넘는 국가에서는 보건예산의 6%가량을 정신보건에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원 정책 없는 탈시설화는 정신질환자 자살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만큼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센터가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요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전문요원의 고용안정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실장은 “다산콜센터처럼 중장기적으로 독립적인 제3의 법인이나 재단이 정신보건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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