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태용 공인노무사

‘노동에세이’를 약 5년 만에 다시 쓰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중병(비인두암)을 앓아서 치료를 끝낸 후 약 3년 전에 공인노무사 업무를 중단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1년 동안은 치료로 망가졌던 몸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에만 전념했고, 그 다음해인 2014년에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약직 노동자(10개월 근무) 일을 지원하게 됐다.

계약직 노동자 일을 지원한 곳은 고향에 위치한 국가기관이고, 하는 일은 공무원 업무를 보조해 주는 ‘업무보조원’이었다.

지원서류에 간단한 이력서가 있어 지금까지의 경력사항을 정리해서 작성했다. 경력사항을 작성하던 중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에서 노동상담소 상담실장으로 근무했던 기간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국가기관의 보수적인 정서를 감안하면 민주노총에서 근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입사하는 데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것이 상식이므로 경력사항을 누락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과, 경력사항을 누락했다가 입사 후 밝혀질 경우 채용취소된 다수의 대법원 노동판례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노동조합에서 근무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겹쳐졌다.

아시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경력 사칭(누락)으로 인한 해고’ 관련 사안에서 대법원 판사들은 일관되게 경력 사칭(누락)한 근로자에게만 책임을 많이 물었다. 즉 회사와 신뢰관계를 맺어야 할 근로자가 자신의 경력을 의도적으로 사칭하거나 누락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면서 회사 편을 대부분 들어줬다. 그런데 판결문 어디에도 노동조합 경력 및 노동운동 경력을 불온시하거나 범죄시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을 묻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은 없었고, 이런 사회적 풍토로 인해 근로자들이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 경력 및 노동운동 경력을 사칭(누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 경력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회사에 입사할 때 자신의 자랑스러웠던 노동운동·노동조합 경력을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똑같이 고민하지 않았을까였다. 그들이 어떤 길을 선택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공감하게 됐다.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어떤 공인노무사가 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조력하는 노무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한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관점이 아닌 당사자의 관점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조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수많은 상담과 사건 해결이 얼마나 그들의 관점에서 했던 것일까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런 생각과 반성을 하면서 이력서에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에서 노동상담소 상담실장으로 근무했던 기간을 기록하고 입사지원을 했다. 면접 당일, 국가기관 채용부서의 중견 공무원이 “민주노총 노동조합 경력이 있었네요”라며 예상했던 질문을 했고,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담담한 말투로 “네. 상담실장으로 근무했습니다”라고 당당히 답변했다. 무사히 면접을 마치고,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헌법에 근로 3권이 보장돼 있고 과거보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향상됐다고 일부에서는 이야기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 경력을 당당하게 밝히고 그들을 대우해 주는 세상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