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졸업 뒤 웨딩플래너, 스페인어학과 졸업 뒤 플라멩코 댄서가 될 수 있음.”

한국고용정보원이 정부의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 일환으로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20억원을 지원받아 내놓은 ‘대학전공별 진로가이드’에 황당한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과장되고 불필요한 내용으로 인문계열 취업준비생을 우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고용정보원이 발간한 ‘대학전공별 진로가이드’를 분석한 결과 융합직업부문에서 황당한 직업 추천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해당 진로가이드는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열 전공에 맞춰 제작됐다.

이 의원에 따르면 철학·윤리학과 출신에게는 국제결혼상담원 및 웨딩플래너를 추천했다. 결혼관계의 기본이 되는 철학·윤리학적 접근을 통해 웨딩플래너로서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페인어학과 출신에게는 플라멩코 댄서를 추천했다. 고용정보원은 “스페인어 능력과 스페인 문화에 대한 지식은 스페인 춤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정교육학과에는 바텐더, 불어불문학과에는 소믈리에, 독어독문학과에는 브루마스터(양조기술자)를 각각 제시했다. 가정교육학과 전공자는 식음료 문화에 대한 지식과 관점을 형성할 수 있고, 불문학과 출신은 프랑스 와인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전문적 능력을 제고할 수 있고, 독문학과 출신은 맥주 제조기술을 배우는 데 적합하다는 설명을 붙였다.<표 참조>

해당 진로가이드를 인쇄하는 데 든 비용은 전체 예산 20억원 중 46.4%인 9억2천만원이다. 700부를 제작·배포해 한 권당 인쇄비만 3만3천원이 소요됐다. 20억원 중 나머지 예산은 진로가이드 내용을 만드는 연구용역비로 쓰였다. 진로가이드는 어문·인문학계 전공을 두고 있는 전국 종합대학 취업지원센터 등 522곳에 배포됐다.

이용득 의원은 “아무리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해도 인문계열 학생들의 반응은 모멸감을 느낄 정도”라며 “청년고용 실적을 쌓으려는 보여 주기 식 사업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고용노동부와 고용정보원은 더 이상 취업난에 고통받는 인문계열 청년들을 우롱하지 말고 제대로 된 취업지원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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