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가 정착되려면 노동자가 참여하는 산업별·기업별 직무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직무평가 기준을 노사가 함께 결정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연공서열·연고주의를 청산하고 일 중심 사회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되, 성과보다는 직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한국의 임금체계 및 임금정보’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유규창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보편적 임금체계이자 국제노동기구(ILO)가 차별금지를 위해 권유하는 임금체계인 직무급으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직무 중심으로 판단해야”

우리나라의 주된 임금체계는 연공서열급(연공급 또는 호봉급)이다. 나이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다. 유 교수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과거 빠른 경제성장 환경에 적합했으나 현재 환경과는 불일치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연공급 임금체계는 고도성장기의 부산물로서 전근대적 인사관리·조직문화와 함께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저출산·저성장·고령화라는 한국이 처한 현실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특히 4차 산업혁명 같은 전 지구적 변화가 산업·노동시장의 지형을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연공급 임금체계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확대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고령 근로자에 대한 상시 구조조정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산업별 직무급이 도입되면 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는 물론 정규직·비정규직 간, 남녀 간 차별을 없애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비정규직 정책도 사람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전환해 2년 이상 지속적으로 필요한 직무에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초과해 사용하는 경우 정규직(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인정하고 있다.

직무급은 직무(하는 일)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해 그 가치에 맞게 임금을 지급하는 임금체계다. 직무급을 도입하려면 산업·업종별 직무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유 교수는 “노사 공동 직무평가위원회를 구성해 근로자들이 참여하는 직무평가 과정을 정립해야 한다”며 “산업·업종·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직무평가 도구를 개발·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연공서열과 연고주의를 청산하고 일 중심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정부는 능력중심 캠페인을 지속하되 직무를 보다 강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핵심은 현장에 맞는 임금체계 모색”

유 교수에 이어 발제를 한 박우성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연공급을 유지했던 일본은 역할급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며 “맡은 일에 대한 책임과 역할에 기초해 기본급을 결정하는 역할급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다만 “일본의 역할급은 연공급을 완화하고 대안 임금체계를 모색하면서 나타났다”며 “우리나라 기업들도 직무급이나 역할급 같은 특정 제도에 구속되기보다는 현장에 적합한 임금체계가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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