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보내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은 대개 두 가지다. 신용카드 사용금액을 알려주면서 입금날짜를 안내하거나,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연체이자를 물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전산장애로 은행업무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안내 메시지다. 어떤 내용이든 고객은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시중은행은 지난 21일 고객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용은 종전과 달랐다.

“23일(금)에 금융노조 총파업이 예정돼 있어 창구업무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23일을 피해 방문해 주시거나 인터넷·스마트 뱅킹이나 자동화코너를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시중은행의 파업안내 문자메시지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에 감원 태풍이 몰아치자 금융노련(현 금융노조)은 1998년 9월 생존권을 걸고 총파업을 벌였다. 개별 기업노조의 쟁의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금융산업 노동자들은 연대해 단체행동을 벌였다. 산업별노조 차원의 파업은 2000년, 2014년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은행은 고객에게 파업안내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산하 은행 지점에 안내문을 게시했을 뿐이다. 이번엔 달랐다. 은행이 선제적으로 파업안내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에야말로 고객들은 산업별노조 차원의 총파업을 체감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은행이 보낸 메시지는 ‘총파업’ ‘고객 불편’ 외에 다른 것을 연상시키지 않았다. 금융노조가 왜 단체행동에 나섰는지, 노사 또는 노정 협상 당사자의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객은 알 길이 없다. 메시지는 그저 “파업은 곧 고객 불편”이라고 읽힐 뿐이다. 게다가 고객 정보와 활용은 은행이 독점하고 있다. 단체행동에 나선 까닭을 알릴 수단이 태부족인 노조 입장에선 불리한 여건이다.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은행의 메시지에 노조의 목소리도 묻히게 된다. 파업사태는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고객은 파업의 본질에 다가서기보다 겉돌게 된다.

이쯤 되면 정부가 조정자로서 자임하는 게 맞다. 파업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반대다. 정부는 금융노조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조치”를 강조했다. 정부는 “금융·공공노조 총파업은 국회가 노사에게 법적 책무로 부여한 임금체계 개편을 따르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금융·공공노조의 파업에 대해 정부는 으름장을 놓는데 급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이번 파업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간 금융·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지만 ‘불법 논란’으로 얼룩졌다. 임금·근로조건을 명시한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함에도 사용자측이 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의 경우 과반수 직원 또는 과반수 직원이 가입한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함에도 사용자측은 이를 어겼다. 사용자측은 이사회를 열어 취업규칙 변경을 강행했다. 정부는 이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노조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취업규칙 변경지침을 내렸다. 근로감독관의 행동요령에 불과한 노동부의 행정지침이 모법인 근로기준법을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킨 것이다. 또 성과연봉제가 임금체계 개편의 전부인 양 호도했다. 연공급·직무급 등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보다 지급형태에 불과한 성과연봉제를 강변했다. 정부가 앞장서 금융·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독려했다. 이 과정에서 노사 자율교섭은 실종됐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정부가 대화의 주체로 나서는 게 옳다. 사용자측을 앞세워 대리전을 하는 것은 시간만 낭비한다. 어차피 정부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정부 스스로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단체협상의 한 주체로 자임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조와의 대화는 거부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의 자세는 모순이다. 금융·공공기관노조는 정부가 대화에 나선다면 파업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파업 사태를 키우지 말고 정부는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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