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로드가 노조에 가입한 설치·수리기사 숫자를 조사하고, 그에 따라 센터장을 경영평가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이 공개됐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됐을 때도 하청업체 노사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던 티브로드가 실상은 뒤에서 노조 흔들기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티브로드 센터 경영진단 계획안' 문건을 공개했다. 계획안은 티브로드 모회사인 태광그룹 경영기획실 경영진단팀이 2014년 11월10일 작성했다.

“희망연대노조 가입여부 48개 센터 전수조사”

이 문건에서 태광그룹은 △마케팅 영업 △기술 운용 △인사노무 부문으로 분류해 경영진단 점검사항을 지시했다. 인사노무 항목에는 2013년 설립된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와 관련된 지시사항이 담겨 있다. 핵심은 48개 센터(하청업체)에 희망연대노조 가입률을 전수조사하라는 내용이다. 비정규직 현안에 대응할 수 있도록 노조 가입률을 센터장 평가에 반영한다는 내용도 있다.

문건에는 “센터직원의 조사를 지양하고, 본부에서 센터장 면담 및 자료조사로 진행(하라)”는 주의사항까지 적혀 있다. 하청업체 설치·수리기사의 노조 가입 여부를 조사할 경우 부당노동행위 논란이 빚어질 수 있으니 센터장을 통해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 외에도 문건에는 “희망연대노조 가입률 18%, 300여명으로 파악”이라거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등 정규직 전환 문제 지속 모니터링 필요” 같은 문구도 있다.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그룹 차원에서 자회사 노사관계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키운다. 지부와 티브로드 협력사협의회는 문건 작성 한 달 전인 2014년 10월 첫 임금·단체협약을 잠정합의했다. 지부는 임단협 체결을 위해 그해 6월부터 잠정합의 직전까지 넉 달 동안 파업했다.

‘티브로드 시나리오’ 실행됐을까

계획안이라는 이름을 단 문건은 실제 실행됐을까. 2013년 4월 지부 설립 뒤로 매년 쟁의행위를 포함한 노사 갈등이 반복됐다. 정황상 티브로드가 이에 대응할 필요성은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지난 2월과 3월 티브로드 한빛북부센터와 전주기술센터에서 대량 해고가 발생했는데, 이 두 센터의 노조 가입률이 상위권이었다는 것이다. 지부에 따르면 이들 센터는 2013~2014년까지 평균 노조 가입률이 80%에 육박했지만 노사 갈등이 계속되면서 현재는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올해 2월과 3월 하청업체 변경 과정에서 51명의 조합원들의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다.

박재범 노조 사무국장은 “티브로드는 하청업체와 2년마다 계약을 하는데 2014년 임단협 체결 이후 첫 위탁계약에서 노조 조직률이 전국 상위였던 한빛과 전주센터가 재계약이 안 돼 미심쩍다”며 “고용승계마저 안 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사무국장은 “정황상으로 보면 문건이 노조탄압 용도로 실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진 지부장은 “연초에 도봉노원센터와 천안아산센터에서도 내년 재계약이 안 돼 고용승계가 안 될수도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며 “문건을 보니 노조탄압 시나리오대로 노조가입률이 높은 센터 중심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도봉노원센터는 이 지부장이 근무하는 센터고, 천안아산센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노조가입률이 70%가 넘는다.

문건이 실제 실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점은 또 있다. 2014년 11월 태광그룹이 작성한 문건에는 “2015년 티브로드 제시안은 임금동결로 가닥, 대비 필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듬해 4월 티브로드 협력사협의회는 임금교섭에서 “회사 여건상 (임금)동결이 불가피하다”며 △임금 △상여금 △수당을 동결하자고 제안했다. 협의회가 임금동결을 고수하자 노사는 수개월 동안 갈등했다.

이용득 의원은 “태광그룹이 직접 계열사 협력업체 노사문제를 관장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문건 내용만 보면 협력업체 직원을 태광그룹 근로자라고 볼 수 있는 만큼 티브로드 원청이 해고자 문제를 반드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브로드는 해당 문건 존재를 부인했다. 티브로드 관계자는 "문건 양식과 사용된 용어가 티브로드와 태광그룹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며 "해당 문건은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후 이용득 의원에게 문건이 조작된 사실을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용득 의원실 관계자는 “문건은 태광그룹 내부자를 통해 입수한 것으로 조작된 문건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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