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동자들이 23일 성과연봉제 확대를 반대하면서 하루 총파업을 진행한다. 11월과 12월 2·3차 파업도 예고했다. 공공기관 노조들도 같은 이유로 총파업에 나설 계획이어서 노정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노동자들이 산업 차원에서 총파업을 한 것은 1998년 9월이 처음이다. 이어 2000년 7월 다시 총파업을 했다. 모두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에 닥친 구조조정에 반발한 파업이었다. 그리고 2014년 9월 공공기관 복지축소에 반발해 금융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차례 파업을 했다. 금융산업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몰고올 정부 정책이 나올 때라는 공통점이 있다. 생존권 보장과 올바른 금융산업 미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최근 상황도 다르지 않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정관계 파국의 원인을 짚어 봤다.<편집자>

[게재 순서]
1. 무한경쟁, 벼랑 끝에 몰린 금융노동자들
2. 고객 돈 볼모로 한 성과주의 경쟁
3.‘위기-성과주의-위기’ 부른 관치금융

 

한 번 닥친 큰 위기는 성과주의 경쟁을 불렀고, 이는 다시 위기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성과주의는 오히려 강화됐다. 자칫 또 다른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성과연봉제 확대를 둘러싼 금융산업 안팎의 상황이 그렇다. 물론 공공부문과 여타 민간부문 산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산업은 이제 ‘위기→성과주의→위기’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돼 버렸다.

금융위기 부른 성과주의
해외는 규제, 한국은 되레 강화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 금융기관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성과주의 경쟁체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실태평가 제도를 금융당국이 도입해 점포 증설 등의 인가에 사용한 영향도 컸다. 대다수 금융기관은 집단성과 평가에 핵심평가지표(KPI)를 사용하고 있다.

성과주의 경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미국의 은행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성과주의 급여제도를 도입했고, 이에 따른 무리한 판매경쟁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외화대출 경쟁을 했던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영향으로 다시 금융위기에 빠졌다. 미국·영국 정부는 과도한 성과경쟁이 위기를 부른 것으로 인정하고 성과급제도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은행 간부들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더니, 내년부터는 평직원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성과주의 부재? 관치금융 탓”

성과주의 자체에 대한 실효성도 논란거리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금융산업의 성과를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관치금융 문제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우리나라 금융에 성과가 부재한 주된 이유는 오랫동안 정부가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정책을 만들어 관리·감독을 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정부의 당연한 역할과 관치금융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이나 개입의 목적이 금융산업 발전 외에 다른 곳에 있거나,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관치금융”이라고 규정한다.

관치금융이 금융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사례는 많다. 역대 정부가 금융정책을 정권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마다 금융산업은 위기에 처했다. 예컨대 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부도에 직면한 대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권에 대규모 대출을 독려했다. 이는 곧 은행의 위기와 대규모 구조조정, 두 차례에 걸친 금융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불렀다.

2003년 카드대란 사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외환위기로 수출길이 막힌 대기업들을 위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한 것이 화근이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정명희 금융경제연구소 실장은 “금융시장 안정과 자율보장에 주력해야 할 정부가 금융회사를 압박해 리스크를 키우는 행위는 관치금융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두고 하는 말이다.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 주도로 출시된 ISA는 불완전판매의 대명사가 됐다. 그래 놓고 정부가 다시 불완전판매를 감독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지원과 관련한 청와대 서별관회의 역시 관치금융의 극치를 보여 줬다. 금융권 낙하산 인사는 관치금융 폐해를 극대화한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이면에는 낙하산 인사 문제가 있었고, 이를 매개로 부실지원이 이뤄졌다.

카드대란과 저축은행 사태, 키코 사태(2008년)·동양증권 사태(2013년)처럼 굵직한 금융사고의 뒤에는 항상 낙하산 인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취임한 금융기관 낙하산 인사는 무려 204명이다.

전형적 관치금융 ‘성과연봉제’
“금융위기 재발 우려, 자율에 맡겨야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성과연봉제 강행은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다. 정부는 노동·금융 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 격차의 책임을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노동개혁의 흐름 속에서 성과연봉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발표하자 기획재정부는 권고안을 내놓고, 금융위원회는 가이드라인까지 발표하면서 적극 개입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의 취지와 달리 성과연봉제를 평직원까지 확대하도록 규정한 시행령도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에 휩싸여 있다.

윤석헌 교수는 “금융개혁을 위해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다고 하지만 금융산업 발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별로 없다”며 “오히려 성과경쟁으로 부실대출을 부추겨 가계대출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관치금융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임수강 경제학 박사는 “은행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당국의 독려를 뒷받침 삼아 경쟁적으로 외화자산 확대에 매달리다 큰 손해를 봤고,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위기국면에 빠져들었다”며 “은행권 성과급제 확대는 그런 상황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와 관련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정부는 성과보상 체계를 도입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각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스스로에 적합한 성과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학태·양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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