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공부문 노동계 파업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연일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이 지난 20일 “노동계가 법이 규정한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데 이어 21일에는 기자들에게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자료를 배포하면서 성과연봉제를 부각했다.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노동부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거나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부가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 120곳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홍보했던 것과 달리 실제 시행을 위해 노동부에 신고한 공공기관은 17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재계 주장 거짓 혹은 호도하기

정부나 재계가 “노동계가 임금체계 개편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2013년 4월 개정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규정된 “사업 또는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항과 지난해 9월15일 작성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 있는 “정년연장 연착륙 등을 위한 임금제도 개선”에 관한 조항이다.

정부와 재계가 주장하는 대로 두 조항 모두 임금체계 개편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성과연봉제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되던 2013년 4월을 전후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다시 살펴본 결과 당시 쟁점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였다. 성과연봉제는 회의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노동부를 상대로 “임금체계 개편 등이 임금피크제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다. 노동부 역시 “임금피크제를 의미한다”고 답했다. 당시 방하남 노동부 장관이 “장기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말한 게 전부다.

이기권 장관이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성과연봉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는 주장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이 장관은 이를 근거로 노동계 파업에 대해 “국회가 노사에게 부여한 책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몰아세웠다. 마치 고령자고용법에‘성과연봉제 중심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주장해 금융·공공부문 노동계 파업을 정당성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9·15 노사정 합의문에서도 성과나 연봉제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당시 노사정은 합의문에 “직무·숙련 등을 기준으로 해 노사 자율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합의 당사자였던 한국노총은 ‘노사 자율’이라는 표현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다면 현재 임금체계를 유지하든 다른 임금체계를 바꾸든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며 “정부나 사용자가 강압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임금체계 개편을 밀어붙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이 합의는 올해 1월 노동계의 파탄 선언으로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 상태다.

공공기관 120곳 도입했다더니, 신고한 곳은 17곳 불과

노동부는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서도 성과연봉제를 부각했다. 노동부는 올해 상반기(6월30일 기준) 임금을 결정해 신고한 사업장 3천691곳을 대상으로 임금체계 현황을 조사했는데, 12.4%인 454곳이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4%가 임금체계를 개편했던 것에 비한다면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공공부문 조사 대상은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을 포함해 352곳이었는데, 신고를 마친 곳은 10.2%에 불과한 36곳이었다. 이 중 지방공기업을 제외한 공공기관은 17곳에 불과했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6월10일 “120개 공공기관에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던 것과는 격차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120곳 중 53곳은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만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여전히 논란이 큰 상태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도입을 결정했지만 신고를 늦췄을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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