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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 첨병 미국 웰스파고은행의 몰락] 개인 실적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파고 직원들이 고객 몰래 유령 계좌를 만들어 수수료를 챙긴 사실이 최근 당국에 의해 적발됐다. 웰스파고는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들이 벤치마킹 1순위로 꼽는 금융부문 성과주의 경영의 첨병이다.

미 연방 소비자금융보호국에 따르면 웰스파고는 2011년부터 고객 명의를 도용해 허위 예금과 신용카드 계좌 200만개를 만들었다. 은행 직원들은 고객의 기존 계좌 잔고 중 일부를 유령 계좌로 옮기는 방법을 썼다. 가짜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만들고, 고객 몰래 고객 명의 체크카드를 발급했다. 허위 신용카드 연회비 등 명목으로 고객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이 40만달러가 넘는다.

◇국내 은행 벤치마킹 1순위의 맨얼굴=이번 스캔들로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 자리에 서게 된 존 스텀프 웰스파고 최고경영자(CEO)는 “비윤리적인 판매 행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회사 내에서 조장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거짓이라는 직원들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웰스파고 경영진들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마케팅 목표를 세운 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4차례 실적을 점검하고,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직원을 무자비하게 질책했다. “매니저들이 고객 몰래 계좌를 오픈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상태다. 이번 스캔들이 조직적 불법행위의 결과물일 가능성을 보여 준다. 스캔들에 연루된 직원들은 해고자 신세가 됐다. 유령 계좌 개설에 가담한 직원 5천300여명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실적을 쌓기 위해 불법행위도 마다할 수 없었던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웰스파고 스캔들은 금융권 성과주의의 맨얼굴을 보여 준다. 그런 웰스파고가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닮고 싶어 하는 은행 1순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어윤대 전 회장 시절부터 웰스파고의 성공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밝혀 왔다. 임영록 전 회장 시절에는 웰스파고와 업무협약을 강화하면서 경영현안을 공유하고 보험회사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전 신한은행장 A씨도 웰스파고가 은행 이자외 수익이 전체의 50%에 달하는 점을 들어 은행과 비은행 사업 간 시너지를 강조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웰스파고처럼 임직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영업에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웰스파고 스캔들은 과도한 성과 압박이 비윤리적 행태를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모리스 슈바이처 컬럼비아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과도한 목표 설정이 비윤리적 행위와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댄 케이블·프릭 버뮬렌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는 성과주의에 기반한 성과연동 급여 시스템의 문제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성과연동 급여 시스템은 금전보상과 같은 외재적 동기를 자극하고, 이때 다른 사람을 속여서라도 보상을 받고자 하는 유혹이 커진다”며 “CEO에 대한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부여가 이익 조작이나 주주 소송, 제품 안전성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금융권 성과주의가 불완전판매 같은 금융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노동계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정부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금융사고에 의한 소비자 피해 가능성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는 스스로의 내부통제를 통해 견제·감시장치를 확충해 나가고,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과 금감원 소비자 보호조직 강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성과주의 홍역 치른 외국은?=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우리보다 앞서 성과주의 홍역을 치른 다른 나라 정부와 비교된다. 금융권의 성과 위주 보상체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개인 성과주의 후퇴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금융안정위원회는 2009년 ‘금융회사의 건전한 보상체계 원칙’을 발표하고 성과 위주 보상체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융회사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훼손할 정도의 과도한 성과급을 제한하는 ‘성과보상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유럽연합은 ‘금융산업 보상에 관한 권고사항’을 통해 보상정책이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와 장기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럽은행감독위원회 역시 ‘보상정책에 관한 중요 원칙’을 통해 과도한 리스크 추구의 폐해와 개인 성과급 확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제재가 동원된 경우도 있다. 영국 금융감독원은 금융권의 과도한 인센티브 제도를 금융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고, 2010년 1월부터 2012년 3월까지 금융사 대상 실사를 벌였다. 이를 토대로 로이드은행 등에 2천800만파운드 벌금을 부과하고, 69만2천여명에 달하는 피해 고객에게 1억파운드 손해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금융 선진국 가운데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제재나 금융 리스크 보완책 없이 성과주의만 앞세우는 나라는 없다. 금융위가 밝힌 '금융회사 스스로의 내부통제'와 '소비자 보호조직 강화 정책'이 얼만큼의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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