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을오토텍 생산 현장은 언제든 생산 재개가 가능하도록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 조합원들은 평소 자기 근무지 인근에서 잠을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제정남 기자
▲ 추석을 맞아 지회 조합원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직장폐쇄 현장에 모처럼 함박 웃음이 퍼졌다. 제정남 기자
▲ 지난 14일 오전 갑을오토텍 공장 정문 모습. 추석 연휴를 보내러 외박을 나간 조합원들의 빈자리를 남은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메웠다. 제정남 기자

"어떻게 오셨습니까?"

"네. 지회 사무실에 방문 왔습니다."

"위치는 아시죠. 아무 곳에나 주차하시면 됩니다."

추석연휴가 시작된 지난 14일 오전, 용역경비·경찰·관리직들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지회장 이재헌) 조합원들이 대치해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공장 정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충남 아산 갑을오토텍 공장 입구에는 출입차량을 안내하는 조합원 서너 명만이 서 있었다. 정문 뒤에는 조합원 10여명이 여름 내내 따가운 햇빛을 피하려 설치한 천막 아래 앉아 휴식을 취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지회가 배치한 근무조들이다.

갑을오토텍 공장 건물 안은 대규모 인원이 농성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음료수·담배자판기도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고, 화장실조차 악취 하나 없었다. 건물 내 곳곳에 붙은 직장폐쇄 비판 대자보나 지회 지지 성명서들만이 이곳이 첨예한 노사갈등의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난해 특전사·경찰 출신 노조파괴 용병을 채용해 지탄을 받은 갑을오토텍은 올해 또다시 노조 무력화를 시도했다. 노사는 노조파괴 사태와 별도로 지난해 임금교섭과 올해 임금·단체교섭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회는 합법적으로 쟁의권을 확보한 뒤 조합원 지명파업과 태업을 간헐적으로 벌였다. 그런데 회사가 쟁의행위 기간에 뽑은 관리직 신입사원을 생산현장에 투입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지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금지하는 쟁의행위 중 대체인력 투입에 항의하며 지난 7월8일부터 공장 내 농성을 시작했다. 회사는 같은달 26일부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추석 맞아 70일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간 조합원들

지난 14일은 지회가 농성을 시작한 지 69일, 직장폐쇄가 단행된 지 51일째 되는 날이었다. 400명이 넘는 지회 조합원들은 농성을 시작한 이래 계속 공장을 지키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오전 6시에 기상집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고, 조를 짜서 대전지방법원과 서울 갑을오토텍 본사 앞 등에서 시위를 벌인다. 오전 8시30분께면 출근하려는 관리직 150여명과 공장 정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회사가 용역경비를 배치했을 때는 정문 앞 대치가 하루 종일 반복됐다. 관리직들이 이내 공장진입을 포기하고 돌아가면 공장을 청소하는 일부터 하루 일과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오후 7시께 연대단체들과 함께하는 저녁문화제를 매일 개최하고 난 뒤 조별로 일과를 평가하고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는 공장 안, 평소 근무하는 생산현장 근처다.

추석연휴 일정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조합원 400여명이 2개 조로 나뉘어 2박3일씩 휴가를 떠났기 때문이다. 1조는 13일부터 15일까지, 2조는 15일부터 17일까지 가족들과 함께 연휴를 보냈다. 농성을 시작하고 처음 가진 휴가다.

13일 휴가를 떠나는 조합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중 나온 가족들의 차를 타고 공장을 떠나는 조합원들을 향해 남아 있는 조합원들이 길가에 줄지어 서서 함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다.

지회가 농성을 시작한 이후 조합원들은 가족들과의 면회나 만남을 꺼렸다. 서로 배려하느라 그렇다. 집이 멀거나 갖가지 이유로 농성장에 오지 못하는 가족이 있으니, "나만 좋자고 가족들을 부를 수 없다"는 이유다.

공장 안에서 만난 이재헌 지회장은 "외박을 나가는 조합원들의 얼굴에 활짝 웃음이 핀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며 "가족들의 품으로 온전히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회장으로서 갑갑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모처럼 웃음꽃 … “언제든 생산 가능하도록 현장 관리”

극심한 노사갈등 현장이라고는 하지만 명절 분위기는 공장 담벼락을 이미 넘어와 있었다. 현장을 지키는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곳곳에서 윷놀이 판을 벌였다. 지회가 내건 우승상금 10만원이 흥을 돋웠다. 농성이 끝나면 우승한 조에 회식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시상식에서 이재헌 지회장의 폭탄발언이 나왔다. "오늘 저녁 문화제는 명절을 맞아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추석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는 조합원들의 한바탕 웃음이 직장폐쇄 현장에 넘쳤다.

자동차 공조장치를 만드는 생산현장은 윤이 날 정도로 깨끗이 정리돼 있다. 70일 가량 가동을 멈춘 현장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공장을 안내한 황아무개 조합원은 "현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항상 하고 일터를 지키고 있다"며 "회사가 지회와 대화를 하겠다는 자세만 보인다면 바로 생산을 시작할 수 있도록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조합원 가운데는 올해 정년퇴직 대상자가 7명이나 된다. 이들도 함께 농성하고 있다.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년을 공장 안에서 보낼 처지에 놓였다. 김아무개 조합원은 "더 이상 후배들이 마음고생 몸 고생하지 않고 일할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며 "회사 요구에 항복하면 비정규직이 되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노조 없이 노예처럼 일만 하는 상황이 된다. 반드시 이 싸움을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점심 식단은 특식으로 준비됐다. 큰 스티로폼 그릇에 쌀밥과 김치·달걀 프라이가 올랐다. 두부·호박이 아낌없이 들어간 된장국에, 고추장을 밥에 올린 뒤 천막 아래에 앉았다. "농성을 시작하고 달걀 프라이 나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것도 두 개씩이나 주네요. 정말 특식입니다." 식사 자리는 금세 추석 얘기로 꽃을 피웠다.

"추석 전에는 사태가 끝날 줄 알고 벌초를 직접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최근에 급하게 벌초할 사람을 구했는데 산소 하나당 15만원을 달라고 하네요. 울며 겨자 먹기지만 할 수 없었죠. 어서 농성이 끝나고 산소 찾아뵙고 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어느 50대 조합원의 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국정감사서 노조파괴 사태 해결 실마리 찾을까

20대 국회 첫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는 갑을오토텍 사태 등 노조파괴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환노위는 이미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 등을 증인으로 결정한 상태다. 노조파괴를 주동한 이유로 수감 중인 박 전 대표는 재판을 이유로 국감 출석을 회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심 재판을 앞두고 보석을 신청했다. 다음달 6일로 예정된 박 전 대표의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지회는 보석 불허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노조파괴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인데 가해자인 박 전 대표가 풀려나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국감이 갑을오토텍 사태 해결의 단초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회는 갑을오토텍이 협력사를 통한 대체생산을 하고 있고, 직장폐쇄가 불법이라며 관련 내용의 고소장을 지난 7월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렇다 할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헌 지회장은 "국감에서 갑을오토텍 사태가 다뤄질 것으로 확정되자 노동부가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노조파괴·부당노동해위 실태가 국감을 통해 확인될 경우 사태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갑을오토텍은 어떻게든 노조를 무너뜨리려고만 하며 사태를 끌고 있다"며 "국감에서 박 전 대표를 만나면 '회사가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하면 지회는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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