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성과연봉제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노정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금융·공공·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추석 이후 연쇄파업에 들어간다. 노조가 요구한 노정교섭에 정부는 반응이 없다. 정부는 2대 지침을 발표하고, 지침을 근거로 공공기관에 노동자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임금체계를 바꾸라고 채근했다. 노정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에 우려를 표한다. 93개 단체가 참여한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저지 시민사회공동행동이 그 이유를 기고로 알려왔다. <매일노동뉴스>가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박근혜 정부는 방만경영을 빌미로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 한다. 공공기관 방만경영의 대표적인 예는 낙하산 기관장들의 방만한 인식과 행태다. 공공기관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데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장들의 철학은 공공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장은 시종일관 의료민영화 지지자다. 최근 임명된 서창석 병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를 역임했고 현 정부의 정보기술(IT)-의료연계산업 활성화를 선두에서 외친다. 공공병원 수장인지 의료산업 대변자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과거부터 의료민영화에 앞장서 왔다.

공공성에 대한 ‘방만한’ 인식의 소유자들이 공공의료기관의 단체장을 맡은 것이 바로 방만경영이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방만’은 공공성을 주장하는 노동자들과 노조의 ‘의식’인 듯하다. 정부가 올해 3월 발표한 ‘제1차 공공의료 기본계획’에서 방만경영의 예로 ‘노조의 경영권 참여’를 거론할 정도다. 정말 공공기관 노조가 경영에 참여했다면 저런 인사들이 기관의 장으로 올 수 있었을까. 방만을 핑계로 도입될 ‘성과연봉제’는 이런 과정에 쐐기를 박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간병원에는 온갖 종류의 성과급이 판을 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사 성과급은 삼성·아산의 재벌병원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문병원까지 확산됐다. 의료부문에서 성과급이 과잉진료를 일으킨다는 점은 학문적으로도 입증돼 있다. 적정진료와 공공성의 보루인 공공병원에 이를 도입해선 안 된다. 그러나 이미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에는 의사 성과연봉제가 도입돼 있다. 국립대병원의 공공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이유 중 하나다.

이미 망가졌으니 모든 병원 노동자에게 성과급을 적용해도 될까. 민간병원에서는 입원을 알선할 때마다, 비급여 고가 검진·진료를 권유해 성공할 때마다 성과급을 지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논란이 되는 ‘도수 치료’도 치료사에게 건당 성과급이 적용되는 구조로 팽창했다. 이런 민간병원 행태는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한국에서 비급여를 계속 확장하고 과잉진료 및 병의원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토대가 됐다. 여기에 행정직 노동자들 사이에도 외래환자 유치전략, 입원환자 늘리기 전략으로 성과급을 받는 행태가 확산돼 있다. 환자들은 모조리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채 말이다.

민간병원의 바다에 황량하게 떠 있는 무인도가 공공병원이다. 공공병원은 기관수로 고작 5% 수준이다. 그나마 급여진료와 빈곤층 진료를 담당한다. 그런데 이들 병원 전체에 성과급을 적용하게 되면 과잉진료와 돈 있는 환자에 대한 진료를 늘리는 경영전략만 남게 된다. 공공병원이 공공성을 잃고 민간병원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성과급 도입 대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영리 자회사와 부대사업 확대, 병원 인수합병, 영리병원 추진을 허용하면서도 "국민건강보험을 유지하므로 의료민영화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현 정부가 자신 있게 지키겠다는 건강보험 제도는 지난 4년간 누더기가 됐다.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흑자가 있어도 의료비 절감은커녕 입원시 본인부담금을 늘리는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여기에 성과급이 적용되면 기존 진급심사에 한정해 적용되던 징수실적이 연봉에 반영돼 생계형 체납자를 비롯한 빈곤층에 대한 보험료 징수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이 민간보험사처럼 성과에 따른 연봉을 받고 경영실적으로 평가받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메커니즘도 보장성 강화가 아니라 보장성 답보 혹은 축소를 통한 공단의 실적 강화(흑자 유지)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건강보험 흑자는 국민이 받아야 할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남겨진 미충족 의료를 반영하는데도 말이다. 가뜩이나 의료비 부담으로 어려운 국민에게는 재앙이고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과 마찬가지의 수익자부담 구조로 바뀌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민영화와 다름없다.

물론 여타 공공기관도 성과급이 전면 도입되면 공공병원이나 건강보험공단과 비슷하게 ‘공공성 상실’과 사실상 ‘민영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공공서비스가 날로 영리화되는 과정의 완결판이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근간인 노동자들의 ‘공공의식’을 말살하려 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재앙이다.

이는 철도·수도·전기·사회복지 등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은 단지 공공기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87년 민주화 투쟁으로 확보한 우리들의 정당한 민주적 권리와 공공성이 박탈당하는 탈민주주의 과정이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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