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8일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소속 청년노동자가 구의역 9-4 승강장 선로 쪽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참변(이하 구의역 사고)이 발생했다. 그 후인 6월27일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시민단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단이 출범했고 약 2개월에 걸쳐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놀란 것은 구의역 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현장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부 통계로만 보더라도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산업재해자는 127만여명에 이른다. 그중 사망자는 3만3천902명이다. 이를 평균하면 매년 2천422명, 매일 6.6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으로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산재사망자수는 일본과 독일의 4배에 이르고 영국의 14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자랑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사망사고의 대부분이 하청노동자, 즉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제출한 '최근 5년간(2011~2015년) 주요 업종별 30대 기업 중대재해 발생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업종별 30대 기업에서 발생한 산재사망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가리지 않고 비용절감을 명분으로 유해위험업무 외주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돼 중대재해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들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유방임경제와 규제완화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기조가 범람하면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정책의 목표와 가치마저 ‘경영효율’과 ‘비용절감’으로 치환되고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이 상시화됐다. 안전을 위한 규제정책은 기업 경영의 걸림돌인 것처럼 ‘암덩어리’로 취급받은 반면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감축은 최고의 선으로 장려됐다. 안전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하는 것임에도 ‘안전=비용’으로 간주돼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궤도산업에서마저 인위적인 구분에 따라 핵심 업무와 주변 업무로 나누고 주변 업무에 대해서는 민간위탁 내지 외주화를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업무가 주변업무로 밀려나 부차적인 업무로 전락하고 안전을 위한 기준과 규제는 완화되거나 축소됐다. 우리 사회는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비용절감의 명분으로 한편에서는 안전에 필요한 인력을 감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해위험업무를 외주화해 인건비를 줄이는 정책을 강요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할 일터에서 사망재해가 일상화되고 그 사망재해가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정책과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이번 구의역 사고는 지하철에서조차 안전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절감 대상으로 삼은 사회경제정책, 공공부문 경영효율화(합리화)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강제한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의 핵심은 비용절감이었고, 비용절감을 명분으로 안전인력을 감축하고 안전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이를 공기업 선진화·정상화로 치켜세웠다. 안전을 위한 규제를 경영효율에 대한 걸림돌로 취급하는 정책기조하에서 노동자 안전을 담보해야 할 산업안전 관련법과 안전매뉴얼은 형식화될 수밖에 없다. 빈발하는 고장과 장애,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 속도를 강제하는 성과와 실적 중심 환경에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말단의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 가능할까. 구의역 사고는 2인 인력 배치가 불가능한 작업조건에서 2인 1조 근무 원칙을 정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최말단의 사회적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온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돼야 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진상조사 결과 구의역 사고는 공공부문에서조차 안전비용 축소, 인력감축, 외주화 등을 강제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영효율화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을 등한시하고 성과와 효율만을 강요하는 공공부문 정책을 그대로 두고서 구의역 사고에 대한 안전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구의역 사고에 대한 진정한 재발방지대책이란 그간의 인명과 노동 경시 조장, 그로 인해 사망사고를 낳은 정책을 반성하고 더 이상의 무고한 인명 피해가 없도록 안전과 노동 중시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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