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옥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부지부장

지난해 5월 자살한 경기도 부천의 세 자매는 모두 사회서비스 노동자였다. 보육교사로, 간호조무사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한 노동으로 실업과 구직을 반복하다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세상에 “사는 게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2013년 초에는 세 명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과중한 업무를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 복지와 사회복지 노동자의 현실은 열악하고 비참하다. 가족이 아니면 누구도 돌봐 주는 사람이 없는 사회, 열악한 복지수준과 복지전달체계 문제를 사회복지 노동자 개인이 짊어지고 변명해야 하는 사회가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정부는 복지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한다. 노인 빈곤율이 50%에 달하는 사회에서 2만원의 장수수당이, 알량한 몇 십 만원의 청년수당마저도 과분하다는 식이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화마 속에서 장애인 죽어 가도 24시간 활동보조는 비효율적인 낭비라고 없애려 한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연장근로수당도 받지 못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에게 주는 고작 몇 푼의 처우개선비를 삭감하려 한다. 우리 사회의 부를 독식하고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보유한 재벌에게 감면해 주는 전기료는 ‘투자’라고 얘기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는 ‘비용’이고 ‘낭비’라고 한다. 빈곤의 고통 속에서 삶의 끝에 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는커녕 절망을 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4월 ‘복지 구조조정’이라는 재정효율화 정책을 통해 3조원의 복지재정을 절감하겠다고 했다. ‘유사중복 복지사업 정비’로 복지재정을 축소하고 민간위탁, 즉 ‘복지의 외주화’를 확대했다. 정부는 늘어나는 복지 요구를 억누르기 위해 복지를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나태한 ‘개인의 잘못’으로 낙인찍었다. ‘권리’가 아닌 ‘죽지 않을 만큼만’ 보장되는 복지를 강요해 왔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은 복지를 제공하는 노동자와 이용자에게 전가됐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 노동에서 소외된 사람들, 권리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복지와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노동자들조차도 노동에서 소외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이 교육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아이를 돌보는 보육노동자의 상황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빈곤과 갈등의 진짜 원인을 열악한 복지제도에서 찾지 않고 청년과 노인, 비정규직과 정규직, 이용자와 사회서비스노동자로 나뉘어 갈등해 왔다.

이제는 정부가 내세웠던 참여형 복지, 생산적 복지, 맞춤형 복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화려한 수사들에 가려 있던 진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이 정작 부를 독점하고 배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청년과 노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복지이용자와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함께 제도개선과 복지를 요구한다면 더욱 큰 연대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내년 복지예산이 사실상 동결됐다. 복지와 권리가 확대되지 않으면 주민센터가 복지센터가 되고, 아무리 공무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들 달라질 것이 없다. 청년들이,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불안한 미래를 그리는 불행사회에서 벗어나려면 바로 지금부터 복지예산 확대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우리는 개·돼지로 사육되는 복지가 아니라 권리로서 민중복지를 찾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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